알프스 이야기

올바른 삶

서동철 2014. 10. 21. 17:11


계획대로 셀브호른(2655m)을 찾았다. 독일 관광명소 쾨니히 호수 남쪽으로 펼쳐지는 소위 돌바다 지역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집에서 차 타고 얼추 시간 반 정도 달려 마리아알름이라는 오스트리아 한 작은 마을에 주차를 하고 오르기 시작했다. 산이 높아 꽤 일찍 서둘러 올랐다. 새벽 네시 반에 일어나 아침식사 하고 집을 나서 이 마을 주차장에 도착하니 일곱시 반. 이년 전 - 일년 전이라 여겼는데 꼭대기에 올라 방명록을 뒤져 보니 이년 전, 그러니까 2012년 9월이었다. 이리 시간 무지 빨리 간다. 휙, 휙 - 이 산에 처음 올랐을 땐 눈에 덮여 욕 좀 봤는데 이번엔 따뜻한 가을 날씨에 해가 쨍쨍 내리 쬐니 눈 없는 돌산의 벗겨진 모습을 만끽하리라는 자신감을 품고 발길을 옮겼다. 또 사실이 그랬고.

나와 우연히 같은 시간에 주차장에 도착한 한 독일 젊음이와 함께 오르기 시작했는데, 이 친구 무지 빨리 걷더만. 나와는 호흡이 맞지 않음을 알고 일부러 속도를 늦췄다. 아침 산길을 홀로 조용히 그리고 꼼꼼히 즐기고자 하는 나의 욕심 때문이었다. 어느 정도 오르니 이 때쯤이면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아래는 회색 위는 파란색' 을 흔껏 맛볼 수 있었다. 특히 이 곳마냥 많은 산들로 둘러 싸인 지역에서 짙은 안개에 깔려 있는 계곡을 바라보노라면 내가 마치 구름 위에 떠 있는 신선일 수도 있다는 망상에 사로 잡힐 때도 있다. 너무 좋았다. 우리말로 신명난다는 말이 바로 이러한 마음상태에 걸맞는 표현이 아닐까 싶다. 그래 발걸음 옮길 때마다 산신령님께 내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빈 소리 아니다. 한 걸음 두 걸음 옮길 때마다 내 삶의 빈 공간이 무엇인가 실한 놈들로 채워진다는 느낌에 젖으니 하는 소리기도 하다. 살아도 이렇게 살아야지. 남들은 물론이고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을 속이지 말고 오로지 솔직한 자세로 스스로를 대하는 삶, 이게 바로 그 채워짐의 느낌에 바탕이 되는 모습이 아닐까 싶다. 내가 나일 수 있는 삶, 내 본성에 걸맞는 삶의 모습 말이다. 산에 다니면서 이를 절실히 깨닳았기에 산행은 내게 있어 여가선행 이상의 뜻, 바로 내 삶의 모습이라 울부짖는 게다.

욕심같아선 특히 대한민국에서 검사짓한다는 적지 않은 사람들에게 산행을 권하고 싶다. 남들 놀 때 몇년을 머리 싸매고 잠도 잊어가며 공부해 그 어렵다는 사법고시에 합격해 나라의 법을 지키는 엄숙한 자리에 들어섰는데 고작 한다는 짓이 정치권의 시녀 노릇에 다름이 없으니 한심하기 짝이 없다. 아니, 겨우 그 짓거리 하고자 젊은 나이에 그 엄청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았냐 말이다. 측간에 앉아 단지 몇분이나마 그런 시녀짓 하는 자기자신을 뒤돌아 보면 자식들 보기 부끄럽지 않을까? 자식들은 차치하고라도 일단 자기 자신한테 부끄럽지 않은가? 이는 또한 자기에게 그런 귀한 능력을 부여하신 한님께 큰 죄를 범하는 짓이다. 분명 지옥 갈게다. 그래도 권력에 밀착해 이렇게 저렇게 어떻게든 부귀영화를 누리면 그만이지 뭐 하는 심보인가? 지금의 법무부 장관이 이에 앞장 서 모범을 보이고 있는 듯하고. 참말로 한심한 사람들이다. 어디 검사들 뿐이랴. 덜 된 사람이 대통령 자리에 앉아 있으니, 쯧쯧. 김지하란 쭉쟁이는 지난 선거 때 이 사람보고 뭐 내공이 있어 보인다 하더만. 사람이 제대로 늙지 않으면 얼이 빠져 버리는 법이다.

내려가는 길은 다시금 방향표시가 전혀 되어 있지 않은 길을 택했다. 암벽타기 기술적 면에선 그리 어렵지 않으나 그래도 매우 가파르고 잔돌이 깔려 있어 미끄럼을 특히 조심해야 한다 익히 들었다. 근데 멀리서 일단 바라다 보니 도대체 자일없이 내려갈 수 있을까 자문해야 했다. 산이 내비치는 모양새가 오지마라 하며 험상궂은 얼굴을 보이는 듯하니 말이다. 단지 경험에 몇몇 산들은 멀리서 바라보면 이리 험상궂은 얼굴을 내미는데 보다 더 가까이 다가가 살펴보면 또 그렇지 않음을 알고 있어 이에 희망을 걸었다. 아니나 달라, 내려가는 길목에 다가서니 조금 전의 험상궂음이 살며시 웃는 얼굴로 변하는 게 아닌가. 물론 그래도 조심조심 집중해 내려가야 했다. 일에 손대기 전에 너무 힘들어 엄두도 내지 못할 듯 보이는 일도 일단 직접 손을 대고 시작해 보면 하기 전 생각만큼 힘들지 않음을 종종 겪곤 한다. 특히 젊은 사람들 지레 겁먹어 움츠리지 말고 이런 저런 세상 일들을 직접 스스로 겪고 이를 통해 삶의 지혜를 터득하는 모습을 보였음 싶다. 자기 본성에 맞는 일을 하면 아무리 힘들어도 흥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