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프스 이야기

춥지 않은 겨울

서동철 2014. 1. 15. 20:18



겨울산행이 내게 주는 여러 기쁨들 중 으뜸인 것은 산 속에서 느끼고 호흡하는 그 냉기다. 아주 맑고 신선한 기운을 맘껏 마실 수 있는 복인 게다. 눈에 푹 덮힌 나무들 속에서 이런 냉기를 만끽하는 맛은 짜장 일품이다. 하얀 속에서 하얀 기를 마신다고나 할까. 이 청량한 기운을 뱃속 깊숙히 들이 쉬고 다시 내쉬다 보면 배고픔이 찾아올 엄두를 내지 못한다.

올 겨울엔 이 맛을 아직 만끽하지 못했다. 춥지도 않고 특히 알프스 북부엔 눈 또한 적게 내렸다. 해마다 일월 말에 쭉슈핏쩨 지역에서 벌어지는 국제스키대회가 취소되었다 한다. 눈 만드는 기계를 돌려도 워낙 따뜻해 눈이 쌓이지 않아 그렇단다. 물론 겨울이 여적 꽤 길다 하나 나 역시 겨울산행을 위해 적지 않이 투자를 했는데 실망이다. 그렇다고 따질 수 있는 문제도 아니고. 2050년 쯤엔 독일 알프스에선 스키를 제대로  탈 수 없으리라는 전망이니 아무래도 내가 생각을 바꿔야 하지 싶다. 겨울산행을 제대로 즐길 수 있는 곳을 좀더 적극적으로 찾아야 하지 않나 하는 소리다.

결국 중앙알프스 쪽으로 나서야 한다는 소리인데, 이 또한 간단치 않은 게, 낮이 짧은 겨울 날 새벽부터 서둘러 나서면 특히 산길 운전에 위험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길이 얼어 미끄럽기 때문이다. 며칠 전 동네 산에 갈 때 이를 직접 겪었다. 아침 일찍도 아니었는데 응달지역에 놓인 꾸부러진 길을 오르다 몰던 차가 얼추 10미터 정도 미끄러져 달렸던 황당한 경험이었다. 다행히 오르막길이었기에 나름대로 적절한 대응을 할 수 있었다. 그래 제대로 된 겨울산행을 즐기려면 아무래도 최소한 산장에서 일박을 해야지 싶다. 독일 알프스 연맹에 속한 산장들인데 잠자리와 부엌이 마련되어 있을 뿐 그 외 모든 것들은 스스로 알아서 챙겨야 하는 그런 곳이다.

며칠 전 오른 산 속에서 본 모습들은 내게 무척 안스럽다는 인상을 남겼다. 겨울 산이 듬성듬성 눈에 덮여 있을 뿐이니 마치 외부 힘에 의해 입던 옷이 갈기갈기 찢어진 듯한 그런 느낌을 받았다. 철이 철다와야 숨이 고른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