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동철 2013. 7. 31. 17:40


그 넓은 지역에 야생산양들 서너마리들과 사람이라곤 나 혼자 뿐이었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 내리쬐는 뙤약볕이 내게 경고의 소리를 던지고 있었다. 대여섯 시간의 오랜 산행길에 - 마지막 한 시간은 능선 암벽타기 - 지친 몸을 달래며 꼭대기(2468미터)에서 휴식을 취하는데 다리 근육통과 뱃속에 약간의 이상이 있음을 느꼈다. 바로 아래 계곡에 흐르는 시냇물로 서둘러 내려갔다. 짓터르스바흐라 불린다. 내가 여태까지 겪은 알프스 계곡들 중 가장 아름답다 여기는 지역에서 다소곳 흐른다. 매년 최소한 한번씩은 찾는 곳인데, 올핸 처음으로, 내 짧은 산행경력 중 처음으로 옷을 몽땅 벗어 던지고 고산 속 계곡 물 속에 몸을 담궜다. 동시에 엄청 마셨고. 집에서 챙긴 산행용 음료수 3리터와 이 계곡 물 3리터, 합쳐 6리터를 주차장에 돌아갈 때가지 마셨다.

높이 2000미터 산 위 온도가 얼추 20도 정도 되고, 빙점은 얼추 5000미터 높이는 되야 맛보리라는 알프스 일기예보였다. 이즈음 독일 전역에 판치는 더위가 그 위력을 맘껏 자랑하는 주말이라고. 사실 또 그랬다. 능선까지 오르는 길이 꽤 많은 힘을 요구했다. 생각보다 훨씬 길고 가파른 코스였다. 능선 암벽타는 맛을 흔껏 즐기기 힘들 정도로 지쳐 있었다. 그렇다고 양쪽으로 얼추 300미터 낭떠러지 산 암벽길 위에서 흐트러진 정신은 허용되지 않는다. 집중력이 생명보장의 바탕이니 말이다. 꼭대기 십자가 옆에 앉아 휴식을 취하며 일년 전 오스트리아 티롤 북부에서 더위에 못이겨 남의 도움을 받아야 했던 기억을 되살렸다. 사전에 제대로 준비를 하지 못했던 내 불찰로 인한 사고였다. 마실거리를 적당히 분배해 취하고 가끔식 휴식을 일부러라도 길게 잡아 몸뚱이의 움직임을 최대한 뒷받침하는 머리가 아쉬웠던 순간이었다. 한번 실수는 허나 병가지상사, 이런 실수를 다시는 되풀이 하지 않겠다는 다짐과 함께 곧장 산 속 계곡 시냇물로 달리듯 내려가 발가벗고 목욕재계를 했던 게다. 등목을 하고 불알을 깨끗이 닦은 뒤 산신령님께 고마움의 큰 절을 올렸다. 야생산양 새끼들이 부러운 눈빛으로 쳐다보는 가운데.

걷는 시간만 얼추 10시간 걸린 마라톤 산행이었다. 더군다나 꽤 힘들었던 오름길이었고. 사실 이런 더위엔 되도록 삼가야 할 그런 산행이었다. 추위야 옷을 더 껴입고 몸뚱이를 더 많이 움직이면 어렵지 않게 이길 수 있다 하나 더위는 사람 맥을 못 쓰게 만들어 버린다. 더위에 몸을 움직이기조차 힘들 경우를 겪는다. 이솝 우화에 나오는 해와 바람과의 내기를 항시 마음 속에 새겨 둔다. 이번 주말에도 38도을 웃도는 더위가 판을 친다 하는데, 참, 그래 저녁 때 동네 산 암벽을 서너시간 타는 걸로 만족해야 싶다. 상대를 알고 나를 알면 최소한의 위험은 피할 수 있다 했거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