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프스 이야기

구페르트(2194m)

서동철 2013. 7. 8. 16:38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구페르트를 다시금 찾았다. 나를 알프스로 인도한 고마운 산이다. 그래 일년에 한번은 꼭 찾아 내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궂은 날씨야 이에 걸맞는 옷과 장비를 갖추면 별 문제 아니다. 물론 좀더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산 어귀 마을에 유료주차장이 있는데 몇년이래 오르지 않고 변함없이 2유로다. 하루종일. 슈타인베르그란 오스트리아 자그마한 산악 농가 마을이다. 전원적 경치와 분위기에 취하는 그런 멋진 마을이다. 자리가 좋다 보니 돈벌이 된다 여기며 적지 않은 사람들 입에 개거품 물고 관광사업판 벌리겠다고 한 때 들이 닥쳤다는데, 동네 사람들과 자연보호에 의식있는 사람들이 모여 이에 반대하며 뜨겁게 거부하는 움직임을 보였다 한다. 결국 장사꾼들이 물러나 지금과 같은 멋진 모습을 계속 보존하고 있다. 더군다나 바로 옆에, 차 타고 얼추 15분 가량 달린다, 관광지로 그 명성을 떨치고 있는 오스트리아 아헨호수가 있는데 이와 대조되어 슈타인베르그가 다소곳 뽐내는 그 아늑함이 돋보인다.

구페르트 또한 특이한 게, 함께 맥을 잇고 있는 산이 없이 혼자 우뚝 솟아 있어 꼭대기에서 보이는 사방 알프스 경치가 눈길을 잡는다. 코스는 그렇게 어렵지 않다만 단지 꼭대기 바로 밑 암벽이 가파르니 좀 더 많은 집중력이 필요하긴 하다. 이런 저런 뜻에서 알프스를 처음 찾아 맛보고픈 사람들에게 보여주고픈 그런 멋진 산이다. 알프스 산행의 입문용이라고나 할까. 그러다 보니 시도 때도 없이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이 산을 찾는다. 남녀노소 섞인 모습이다. 때론 그래 시끄럽기도 하다. 이번에 오를 때 내 뒤에 두 젊은 남자들이 뒤따르고 있었는데, 이 친구들 쉬지 않고 서로 주절대더만. 일부러 속도를 내 거리를 뒀다. 내려갈 땐 쪼께 돌아가는 길을 골랐는데, 아무도 없이 나 혼자 한적하니 참 좋았다.    

톰, 내게 이 구페르트 산을 소개한 친구다. 얼추 이년 전에 함께 다시금 이 산을 찾았는데, 톰은 정상 부근에서 더 이상 오르지 못하겠다며 머물러 있었고 나 혼자 꼭대기에 올라야 했다. 몇년이래 당뇨병으로 고생하는데 몸이 불어 산에 이전 마냥 오르지 못한다. 젊었을 땐 자일조를 짜서 험한 암벽들을 탔던 친군데. 지금은 이년 전마냥 구페르트 꼭대기 언저리까지도 오르기 힘들다고. 사실 그 때도 오를 때 이 친구와 보조를 맞추느라 무지 천천히 걸어야 했고 내려올 땐 또 내 앞에 가던 이 친구 돌밭에서 미끄러져 발목을 삐어 일년 고생을 해야 했다. 몇년 뒤 정년 퇴직하면 시도 때도 없이 산에 갈 수 있어 좋다고 기뻐했던 적이 불과 사오년 전인데 지금 상태를 보면 일년에 한번 산행다운 산행을 하기 힘드니, 안타깝다. 산에 가는 대신 기타를 치며 자기 친구들과 밴드를 구성해 여기 저기 초대되어 연주하는 맛에 이 역시 즐겁다고.

산에 꼭 가야만 한다 하면 어불성설이나 가면 좋다. 삶이 더 풍부해진다. 이를 모르는 사람들이야 이 풍부해짐을 무시할 수도 있겠다 싶다만 이를 아는 사람들에겐 산을 멀리 하면 삶 한 쪽 구석이 텅 빈 듯한, 삶에 무언가 모자르다는 느낌을 지우기 힘들게다. 이를 나름대로 보충하지 않고는 평상심을 유지하기 힘들리라 여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