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시절(1)
형
나는 어릴 때,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부터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밖에서 뛰어 노는 걸 즐겼다. 동네 아이들과 잣치기, 구슬치기 - 그 땐 다마치기라 불렀다 -, 딱지치기, 문방구, 닭싸움, 전쟁놀이 등등. 뭐라 불렀는지 더 이상 기억나지 않는 놀이들이 이 외에 꽤 많다. 아, 짬뽕이라 불린 공놀이도 있었다. 야구와 비슷한 규칙인데 고무공을 주먹으로 날려 치고 뛰는 놀이다. 짬뽕? 아마 이리 불렀을 게다. 나보다 두살 위인 형은 내가 집 밖에서 뛰어놀 때 거의 집 안에 머물러 있었다. 이 양반 집에 눌러 앉아 도데체 뭘 했을까 궁금하다. 그렇다고 책을 많이 읽은 것도 아니고, 뭐 만들고 하는 짓도 하지 않았고. 학교 공부를 그렇게 열심히 했나?
형과 티격태격 쌈질도 많이 했다. 대부분 형을 이겨먹으려는 내 못된 성격이 그 원인이었다. 때론 허나 밥상에서도 문자 그대로 이맛박 터지는 싸움이 이어지기도 했다. 드물게나마 밥상에 김치찌개 - 우린 돼지찌개라 불렀다 -가 오르면 서로 왕건이 건지겠다고 덤벼들었으니 말이다. 비계는 빼고 살코기 더 많이 먹겠다고. 시기심 또한 가끔씩 억누리기 힘들었다. 형은 새 옷을 받는 반면 나는 왜 항상 형이 입던 옷을 물려받아 입어야 하는가 말이다. 형은 아랫목에서 자고 나는 왜 웃목에서 자야 하는가 등등. 어쩌면 나는 단지 공정하고 공평한 대우를 받고 싶었을 따름이었는지 모를 일이다.
그런데 어느 날 형을 형으로서 인정할 수 밖에 없었던 사건이 터졌다. 구슬들을 손에 움켜 쥐고 그 숫자를 맞추는 놀이가 있었다. 구슬을 실제 다마로 불렀듯 일본말들이 판을 쳤다 기억하는데, 이 놀이 역시 으찌,니,쌈 하며 셈을 했고 놀이 자체를 야마라 불렀지 싶다. 확실하진 않다. 어쨌든 내 나이 또래 두명과 이 놀이를 밖에서 시작했는데, 주머니에 갖고 있던 다마들을 다 잃은 뒤 우리 집에 가서 계속 하자 제안했다. 집 뒤에 있던 광 속에 엄마가 쓰던 옛 구슬빽이 있었는데 그 속에 다마들을 모아 놓았다. 나와 형의 공동재산이었다. 집에서도 계속 잃으며 그 많았던 구슬빽 속의 다마들이 거의 사라질 즈음 어느 때인가 형이 불쑥 나오더만 나를 밀치고 나섰다. 그러더만 내가 잃었던 다마들을 다시 다 따고 그 아이들이 갖고 있던 다마들까지 모두 거두어 들였다. 두 녀석들이 서로 짜고 나를 속였는지도 모를 일이다만 어쨌든 우리의 공동재산 보호와 나아가 재산증식을 이룩한 형이 너무 고맙고 그에 따라 크게 보였다. 형이 나보다 낫다 함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던 게다. 집 안에 머물며 놀이에서 상대방의 심리를 꿰뚫는 공부를 했나?
물론 그 뒤에도 형과 티격태격 쌈질 계속 했다. 고등학교 때였던가, 그 즈음에야 비로소 형을 역지사지하는 안목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