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방

어린시절(0)

서동철 2013. 5. 26. 17:18


내가 앞으로 살 날이 뒤로 산 날보다 짧음은 분명하다. 이 삶이 아직 어찌 펼쳐질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흥미진진하다만, 그래도 가끔씩은 이미 지낸 시간들을 하나 둘씩 정리하고픈 마음이다. 이를 통해 다가올 삶이 더 풍부해질 수 있다는 희망 또한 품는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한 웅큼씩 올바른 답을 구함으로써 내 삶에 그만큼 더 뚜렷한 방향설정을 매길 수 있기 때문이다. 내 본성에 걸맞는 삶을 조금씩 더 충실히 꾸릴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나는 어린시절을 수유리에서 보냈다. 유치원 들어가기 전엔 더 깊숙히 들어가 우이동에 살았다는 기억은 있다만 되살려 정리하기엔 너무 흐릿하다. 수유리에선 처음에 화계사 옆으로 넓게 펼쳐진 논 바로 옆에 살았다. 지금은 이 논지대가 말끔히 없어지고 집들이 들어섰다 들었다. 그 땐 개구리 소리에 잠을 설치기도 했고 올챙이 잡으며 봄엔 논두렁에서 쑥을 캐기도 했다. 내 고향이 어디냐라는 질문을 받으면 퍼뜩 떠오르는 곳이 바로 여기다. 지금은 허나 사라진 곳이기에 나는 실향민인 셈이다. 이후, 아마 유치원 다닐 때라 생각된다만, 이사를 해 독일에 올 때까지 산 곳이 같은 수유리, 우이동 쪽으로 쪼께 더 들어가 우이국민학교 근처 동네에 살았다. 내 파란만장한 어린시절을 여적 곱게 담고 있는 곳이다. 최소한 내 기억 속에.


어린 시절을 가만 살펴보면 그 사람의 전체 삶을 얼추 그릴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 19세기 독일 언어예술가 폰타네는 이를 거울 삼아 자신의 자서전적 소설을 세상에 내놓기도 했다. 이 말이 맞는지 틀린지 판가름 하기엔 내 능력이 모자르니 일단 차치해 두고 우선 어린 시절이 전체 삶을 형성하고 이해함에 그만큼 중요하다는 가르침이라 받아들이고 싶다. 따라서 자기 자신을 더 잘 알기 위해선 자신의 어린 시절을 다시금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는 가르침으로도 새기고 있다. 자기 삶에 바탕을 둔 철학을 하고자 하는 사람에게 이리 보매 자신의 어린 시절을 살펴 봄은 필수라고 여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