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동철 2013. 4. 16. 18:30


드디어, 드디어 봄이 왔다. 유난히 길었던 겨울이 꽤 서둘러 물러난 듯하다. 어제 마을 젊은 여자들 옷차림새를 보니 이를 확연히 엿볼 수 있었다. 얼추 25도 가량의 따뜻함을 만끽할 수 있었으니 봄이라기 보다는 여름으로 훌쩍 뛰어넘어 버린 듯도 하다. 물론 산에 눈은 여적 엄청 쌓여 있다. 단지 젖은 눈이라 무겁고 한번 빠지면 흠뻑 젖어 적지 아니 불편해지는 그런 별로 달갑지 않은 눈이다.

보름 전에 집에서 멀찌감치 보이는 산에 올랐는데, 오랫만에 눈과 꽤 다퉈야 했다. 오름길이 남향에 놓여 있어 눈신발이 필요하진 않겠지 했는데 웬걸, 꼭대기 언저리에선 무릎까지 빠지는 눈밭을 꽤 오래 지나쳐야 했다. 꼭대기에 올라 방명록을 들춰 보니 내 앞에 두 명이 왔다 갔던데, 이 사람들 이구동성으로 봄 찾고자 올랐는데 여기에도 봄은 없었다며 투덜대는 말을 남겼다. 난 봄아 어여 오셔 하고 소리를 냅다 질러대고 내려왔다. 그러니 사나흘전 봄이 우릴 찾은 게다.


내려오다 봄소리에 놀란 도마뱀을 만났다.

지난 일요일엔 함께 사는 사람들과 오스트리아 국경 지역에 있는 한 자그마한 산을 찾았다. 다섯살 된 딸아이에 걸맞는 산행을 찾느라 내 쪼께 욕봐야 했다. 일부러 남향길을 찾았는데, 아무리 따뜻한 날씨라 해도 얼추 1100미터 지점에 이르니 눈밭이 넓게 깔려 있었다. 근데 그 아빠에 그 딸이라, 산행에 천부적 재능을 보임에 자랑스럽기까지 했다. 그래 산장에 들러  그 아이 좋아하는 카이저슈마른이라는 먹거리를 주문했다. 나 역시 좀 뺏아 먹었고. 남쪽으로 펼쳐지는 오스트리아 티롤 북부 알프스 모습이 너무 아름다와 맥주 한 잔을 아울러 곁들였다. 살다 보면 가까이 지내는 사람들과 이런 순간을 즐길 수도 있음에 한님께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한참을 지켜봐도 도망갈 줄을 모르더만.

올 여름엔 이탈리아 북부 돌로미텐 알프스를 찾을 계획이다. 메스너와 캄머란더 등 세계 최고의 산악인들이 태어나 자란 곳이다. 그렇다고 이들 때문에 찾는 건 아니고.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될 정도로 아주 아름다운 산악지역에서 한님과 만나기 위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