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번째 편지 - 한 독일농부의 살림살이
지난 삼주 동안 말씀드린대로 바이에른 남쪽 지방에 위치한 한 농가에서 머물다 왔어요. 엄마 둘째 며느리와 손녀 딸과 함께 소위 휴가를 즐겼죠. 길지는 않은 시간이었지만 도시 속 일상생활의 묵은 때를 최소한 일부나마 씻을 수 있었지요. 그래 좋았어요.
農家라고 말씀드렸는데, 엄격히 말하면 휴양업소 겸 농가죠. 원래는 우리가 흔히 이해하듯 소, 돼지, 닭 키우고 옥수수 등 곡식 재배하는 농사를 주업으로 했던 집인데 현존 자본의 효율적 운용이라고나 할까, 아무튼 그 비슷한 취지로 도시에 사는 사람들을 위한 휴양업체로 확장한 경우예요. 그만큼 수요가 있으니 하는 일이고, 특히 남쪽 바이에른 주처럼 알프스 근처의 경치 좋은 고장에서는 이러한 사업으로 벌어들이는 수입이 꽤 짭짤하다 하는군요. 근데 이리 수입이 좋다보니 부업이 주업이 되어버리는 지경에 이르렀다 하네요. 그러다보니 이에 대한 재투자도 늘게 되고, 이러한 맥락에서 손님 맞을 숙박 시설에 확장을 하게 되었고, 무엇보다도 자신들의 일상 생활을 이에 맞추어야 했다는 말을 한스가 하루는 저와 맥주를 나누며 실토하더군요. 집 주인이예요. 저와는 더욱이 나이가 동갑이라 말 놓기로 했지요.
덧붙이는 말이, 자기는 작금 세 가지의 직업을 갖고 있는 셈이라고요: 농부, 휴양업소 주인 그리고 버스 정비사. 마지막의 정비사 직은 이 친구가 기술 배운 게 좀 있어 휴양업소 차리기 전에 농사로는 도저히 살림을 꾸릴 수 없기에 하루 서너시간 버스 회사에 나가 일하기 시작했다 합니다. 아이 셋, 아내, 노부모들이 모두 함께 사는 대가족이죠. 그래 세 가지 직업들이 전체 수입원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어떤가 하고 물으니, 이 친구 씨익 한번 웃더만 위 순서를 뒤집으면 된다고요. 그럼 엄격히 따지면 넌 농부라고 불리기에는 뭐하다, 오히려 버스 정비사라고 불리움이 너의 직업에 걸맞는 게 아니냐 했더만, 맞긴 맞는 말인데, 뭐라 불리우는 게 그렇게 중요하냐 하며 맥주 잔을 비우더군요. 허나 바로 그 순간 한스의 얼굴에 살짝 스치고 지나가는, 뭐라 할까, 고통이라 하면 좀 지나치고, 씁쓸함이라고나 할까요, 얼추 그런 비슷한 흔적을 엿볼 수 있었지요.
농사로는, 이 친구 말이 일단 나와 버렸으니 불평불만 좀 털어놓겠다 하더군요, 특히 자기네처럼 소규모의 농가는 도저히 수지 맞을 수가 없답니다. 더군다나 이즈음 (1990년대 중반) 알차게 진행되는 대규모 농장의 확장에 당할 재간이 없다고요. 우리 나라에서 큰 대규모 슈퍼체인점들이 전국 동네 방네의 자그마한 상점들을 모조리 그대로 생채로 삼켜버리는 그런 꼴이죠 뭐. 그래 자기는 나름대로 농부들의 자치 조직에 나가 이런 저런 토론장에서 소규모 농가들이 살아남기 위한 몇 가지 대안 내지는 개선 정책들을 제안해 가며 조직원들을 설득시키고자 무지 애를 썼건만 이네들의 대부분, 특히 조직의 주요 임원들이 농부 자치 조직이라는 간판 뒤에 숨어 자기 이익 챙기기에만 골몰하더랍니다. 그래 이를 알아챈 그날 당장 그 조직에서 탈퇴를 했다 하네요. 동시에 그때까지 소속되어 있던, 이 조직과도 아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州 정부 보수 여당도 탈퇴하고 소수 야당인 녹색당에 입당했다고요. 농부를 흥하게 만들기 위해 일해야 할 조직이 오히려 농부를 망하게 하니 분통이 터질 수 밖에요. 그래도 녹색당에는 자기 농가 주변의 자연 환경 보호에 적극적이라 신뢰를 보낸다 하더군요. 지금도 대농의 소농 잡아먹기 식 확대 확장은 계속 진행형이고 이를 위해 자기는 힘 닿는대로 계속 싸울 것이라 하며 또 한 잔 벌컥 비우더만요. - 저도 같이 비웠습니다.
그런 후 자리에서 일어나며 내게 하는 말이, 너는 여기 쉬러 왔으니 그런 복잡한 생각 집어 치우고 재미있게 놀다 가는 게 상수여, 그게 또한 휴가업소 주인인 내게도 기쁨이요 복인 것이제, 난 이자 저그 건너편에 있는 옥수수 밭을 갈구어야 혀 하며 트락터를 몰고 나간다고요. 아, 하며 이 친구 잇는 말이, 하마트면 깜박 잊을 뻔 했다 하며 니 딸아이 트락터 태워 준다고 약속했는데 빨리 불러 오라 부탁하더군요.
탈탈탈 트락터는 굴러가고, 신이 나 어쩔 줄 몰라 하는 엄마 손녀는 한스의 옆에 앉아 그 농부, 아니 버스 정비사 아저씨와 이런 저런 이야기 오손도손 즐기는 모습을 먼 발치에서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