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슈핏쩨 (2283m)
오스트리아 티롤 북부 카이저 알프스 지역엔 철마다 엄청 많은 사람들이 몰린다. 늙은 사람들이 쉽게 거닐 수 있는 산중 산책코스도 있고, 젊은 사람들이 자일조를 짜서 오르고자 욕심 부리는 험한 암벽들이 버티고 있다. 산과 어울리는 이런 저런 다양한 모습들을 연출할 수 있는 그런 산악지역이다. 물론 이에 따라 먹고 마실 수 있는 산장들 또한 군데군데 판을 벌리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지역에서 그나마 조용하고 때론 외로울 수 있는 꼭대기를 찾고자 한다면 칼슈핏쩨에 오르라는 귀뜀을 받았다. 그것도 두 사람한테서. 그래 믿었다. 허나 웬걸. 대여섯명의 무리들이 서넛 되었고, 덧붙여 나마냥 혼자 다니는 사람들이 대여섯 명 오르고 내리는 모습이었다. 뭔 일이냐, 시대가 변해도 뭐 이리 빨리 변하냐. 시대가 변한 겐지 산이 변한 겐지 모르겠다만.
한참 오르는데 햇볕이 내리쬐니 기분이 삼삼했다.
밑에서 직접 위를 치어다 봐야 제 맛이 나는데...
허나 오름길에선 나 혼자 뿐이었다. 안개가 짙게 깔렸고 북쪽에 놓여 있는 길이라 그런 듯하다. 나중에 위에서 만난 사람들은 모두 남쪽에서 올라 온 사람들이었다. 내려갈 때 역시 나 혼자 뿐이었으니. 오호라, 그러니까 지금까지보다 더 험하고 더 추운 지역을 골라야 혼자있음을 만끽할 수 있다는 소리다. 왜 혼자여야 되는데? 독일 낭만주의 시대 화가 프리드리히가 말했듯 자연과의 은밀한 대화를 나누고자 해서다. 어찌보면 자연에 비추어진 내 모습과 이루어지는 자기대화일 수도 있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직접 겪어 보아요.
능선 위에서 바라다 본 건너편 산.
한번 더.
전방 칼슈핏쩨와 후방 칼슈핏쩨를 잇는 능선에선 바람에 몸이 휘청거리기도 했다. 다행히 베낭이 무거워 마음이 놓였다만. 혼자 다니는 산행이라 유사시에 대비해 구급약, 간이텐트 등 꽤 많이 챙기고 다닌다. 차갑고 세찬 바람에 며칠 전 새로 산 바람막이 조끼가 그 진가를 발휘함을 뚜렷히 느낄 수 있었다. 반값 세일이라 해서 큰 마음 먹고 샀는데, 아주 잘 샀다는 생각에 뿌듯하기까지 했다. 살 땐 아무리 반값이라 해도 팔도 달리지 않은 웃옷이 뭐 이리 비싸냐 했는데, 몸을 따뜻히 보호하고 땀을 밖으로 서서히 증발시킨다는 기능 땀시 비쌀 수도 있다는 기이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오를 땐 안개에 덮여 보이지 않았던 모습이다. 내려갈 때 찍었다. 가운데 푹 패인 곳을 엘마우어 문이라 부른다. 오늘 오른 꼭대기가 여기서 바른쪽으로 치솟아 있다.
내려갈 땐 끼었던 안개 내지는 구름이 겉혀 오를 때 보지 못했던 주위 산들을 만끽할 수 있었다. 가을 냄새와 더불어 건너편 야산 나무들이 자기들 잎의 알록달록한 색깔들을 뽐내고 있었다. 오를 때 안개 때문에 얼추 반 시간 가량 암벽타는 시작점을 찾느라 헤맸던 불편한 기억을 지울 수 있었다.
카이저 알프스 동쪽 끄트머리 산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