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의 열정과 눈대중
빌리 브란트 아시죠? 독일 사민당 최고의 정치가로 아직도 그 후광이 바래지 않은 정치인. 세계 대전 후 아데나워가 독일과 서방 세계와의 정상화에 결정적 기여를 했다 한다면, 동방 세계 - 소련과 유럽 동구권 -와의 정상화에 결정적 기여를 한 인물이 바로 빌리 브란트죠. 이 양반이 즐겨 썼던 말이 떠오르네요: ">>열정<<으로 하는 정치". 속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일종의 미친 듯한 열기에 힘입어 정치를 한다는 소리죠. 어찌 보면 정치함은 장난함이 아니라는 열변이라 들리기도 하고.
열정, 지난 세기 초 막스 베버는 이 열정을 정치인이 갖추어야 할 세 가지 속성들 중의 하나로 꼽았습니다: 열정, 책임감 그리고 눈대중이 바로 그것이죠. 단지 이 열정은 일반적으로 이해되는 흥분, 무슨 무슨 빠들의 열광과는 분명한 구분이 되는 바, 그 기준으로 이 열정은 >>사실성<<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욕구 충족, 욕심을 채우기에 혈안이 되어 나타나는 그런 열정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철저히 앞에 놓여 있는 정치적 사안들의 문제 해결을 위한 치열한 노력이 기초가 된다는 말입니다. 그러고 보면 두 번째의 속성인 책임감과 아주 밀접한 관계에 있다 보이기도 합니다만.
문제는 허나 세 번째 속성인 >>눈대중<<과의 공존적 관계입니다. 막스 베버는 위의 세 가지 속성들 중 하나만 갖추면 좋은 정치인이다 하지 않고 세 가지를 모두 동시에 갖추어야 한다고 목소리 높이는데, 뜨거운 열정과 분명 차가운 눈대중이 어떻게 공존할 수 있을까요?
우선 눈대중은 베버에 의하면 현실을 현실대로 각자 내부의 응집력과 침착함으로 받아들이는 능력이라 합니다. 설치지 않고, 편중되지 않고, 전체 상황에 비추어 부분적 흐름의 위치를 설정하는 능력이라 해석하고자 합니다. 차가운 머리의 능력이라고나 할까요.
그럼 다시 한번, 이 차가운 머리와 열정이라는 뜨거운 가슴은 과연 공존할 수 있을까요? 만약 있다면 그 가능성은 어찌 표현될 수 있을까요? 베버는 이의 열쇠를 >>거리 유지<<라 표현합니다. 즉, 위의 사실성에 기초한 열정은 달리 표현하면 자신의 개인적 욕구와 스스로의 적당한 거리 유지없이는 불가하며, 눈대중은 닥치는 현실과의 적당한 거리 유지가 그 전제 조건이라는 얘기죠. 그래 베버는 '거리 유지 없음'은 정치하는 모든 사람들에겐 치명적 죄악이라고까지 외칩니다.
이와 관련 베버가 특히 경고하는 정치가의 죄악은 >>자만심<< 내지는 >>허영심<<입니다. 정치가가 위에서 언급한 사실성에 기초하지 않은 열정, 뒤집어 말해 정치가로서 필수불가결한 자기 자신과의 거리 유지를 제대로 하지 않을 경우 나타나는 현상이라 합니다. 달리 말하자면, 사안에 집중하는 정치함 대신 개인적 영달이나 소위 당리당략만을 위한 치졸한 정치는 정치를 죽이는 정치가 최대의 죄악이라는 뜻이지요. 예컨대 권력 쟁취라는 정치가로서는 당연히 설정하는 목표 또한 이러한 목표 달성이 자만심이나 허영심으로 인해 추진된다면 >>자기 스스로에 대한 적당한 거리 유지<< 없는 자기 자신뿐 아니라 심지어 나라를 망치는 부패 정치범 제 1호가 되는 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