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안개
작년 가을 산행 중 헬리콥터로 구조되었던 바로 그 자리를 다시 보고자 했다. 슈타인탈회른들, 이 산을 한 바퀴 도는 산행을 그리며 새벽에 집을 나섰다. 일기예보대로 찌뿌둥한 날씨였으나 점차 맑아지기를, 최소한 드문드문 햇볕이 내리쬐지 않을까 기대했다. 이 산에 진 빚을 갚는다는 마음이었기에 약간은 더 긴장되기도 했고.
얼추 9시간 산행 내내 산안개가 짙게 깔려 있었다. 때론 시야 3미터 이상도 되지 않았다. 더군다나 길표시가 되어 있지 않은 지역이라 방향찾기가 쉽지 않았다. 그나마 한번 거닐었던 곳이라 드문드문 기억을 더듬을 수는 있었다. 오르면서 두 군데 큰 눈밭을 거쳐야 했다. 악명 높은 돌밭길이라 오르기가 꽤나 힘들었다. 그래 이런 날씨에 굳이 정상까지 꼭 올라야 할 필요가 있을까 하며 힘이 닿는 한 오르고 기분이 더 이상 내키지 않으면 곧장 되돌아가기로 했다. 오르면서 지난 번마냥 길 잃을 위험을 피하고자 이런 저런 모습들을 기억에 꾹하니 눌러 새겨두었다. 보니 지난 가을 밑으로 너무 내려갔었다. 적당한 높이에서 바른쪽으로 틀었어야 했는데 이에 주의를 하지 않고 일단 숲으로 들어간 뒤 방향을 틀고자 했던 게 잘못이었음을 알았다. 지도를 좀 더 자세히 살펴본 뒤 걸음을 옮겨야 했었다. 이러한 가르침을 이 산신령님께서 그 때 주셨는데 이번에 다른 가르침을 주셨다. 안개가 그리 짙은 날엔 이 산마냥 표시가 전혀 되어 있지 않은 산행은 아무리 한번 거닐었던 곳이라 하더라도 되도록 피해야 한다는 가르침. 난이도 꽤 높은 암벽을 타고 꼭대기에 오른 뒤 잠깐 쉬고 내려가려는데 이젠 안개와 더불어 비까지 내렸다. 그렇지 않으면 이 지역, 지난 번에는 이 계곡을 타고 올랐다, 무척 아름다운 곳이라 경치 즐겨가며 신나게 내려갈 수 있었는데, 무척 아쉬웠다.
결국 그 자리를 보지 못했다. 깍아지른 절벽 바로 위라 쉽게 찾을 수 있겠다 싶었는데 안개가 모든 시야를 가렸다. 비까지 내리니 산양 새끼들도 어디론가 숨어 있는 듯했다. 오를 땐 보이진 않았으나 이 놈들이 암벽을 타며 떨어뜨리는 돌소리를 들을 수 있었는데. 그 넓은 지역에 하루종일 나 혼자 뿐이었다. 너무 좋았다. 그래 가끔씩 춤을 덩실 추며 내려가곤 했다. 노래도 부르며.
베르흐테스가덴, 이 산뿐 아니라 호흐칼터, 밧쯔만, 호헤괼, 호흐자일러, 호흐쾨니흐 등등이 자리잡고 있는 알프스 지역이다. 독일과 오스트리아에 걸쳐 퍼져 있다. 내가 아주 가깝게 지내는 알프스 지역이다. 쭉슈핏쩨 지역이나 오스트리아 카이저 알프스 지역보다 내 더 꼽는 지역이다. 내년에 내 형이 나를 찾으면 한번 함께 오를 참이다. 이 양반 골프에 시든 몸과 마음을 산행을 통해 다시 피워 볼 작정이다. 산행 뒤 쾨니흐 호수 차가운 물에 몸 담굴 수도 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