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용 지팡이
구글 때려 보니 우리말로 통상 ‘등산스틱’이라 불리는 듯하다. 이즈음 산에 갈 때 많이들 짚고 가는 그 지팡이를 말한다. 우리말이 있는데도 굳이 ‘스틱’이라 부르는 이유를 알다가도 모르겠다. ‘지팡이’하면 우선 노인들이 떠올라 그런가. 그럼 또 어때. 오래 전 제주도 공항 음식점에서 음식을 시키는데 면을 먹고 싶다 하니 종업원 하는 말이 면이 없단다. 그래 옆에서 항공사 직원들이 스파게티를 먹고 있는 모습을 가리키며 그럼 저건 뭐냐 되물었더만 저건 면이 아니라 스파게티라 하길래 그냥 웃고 말았던 기억이 떠오른다.
산행용 지팡이 한 쌍을 새로 샀다. 이 분야에서 이름 난 한 오스트리아 회사 최신 제품이다. 시장에 나온 지 한달 남짓된다. 가볍고 - 무지 가볍다 - 무엇보다도 삼단으로 접을 수 있어 베낭 속에 쏙 들어간다. 이게 왜 좋냐 하면 암벽을 탈 때 베낭 밖에 묶어 놓은 지팡이들이 암벽 돌출부에 걸리곤 하기 때문이다. 베낭 속에 집어 넣으면 때론 무척 신경을 건드렸던 이런 불상사가 일어날 여지가 없다. 덧붙여 산에 오를 때 숲 속 나뭇가지들에 걸리곤 하면 성질 나기도 한다. 주로 산에서 내려올 때만 지팡이의 도움을 받는다.
최신 제품이고 또한 새로 개발된 놈이라 꽤 비싸다. 더 싼 놈들도 많다만 한번 크게 투자를 하기로 했다. 오래 쓰며 나와 은밀한 관계를 쌓고자 하기 때문이다. 몇달 전에 슈퍼에서 한 쌍에 20유로 정도 한다기에 사서 써봤다만, 첫번 사용 때부터 밑에 달린 판이 떨어져 나가고 돌을 찍으면 탁하니 박히는 맛이 있어야 하는데 웬걸, 미끄러져 버린다. 덧붙여 연결고리가 금새 고장나고. 결코 싸다고 할 수 없는 놈이다. 없는 살림에 가격을 보지 않을 수 없지만 실제 어떤 놈이 진짜 실한가를 결정함에 가격만으론 불충분하다. 단지 너무 없이 살다 보니 이런 당연한 살림의 지혜도 쉬 잊곤 한다. 아내한테 내 평생 쓸 놈이다 약속하고 동의를 구했다.
근데 이 지팡이가 산행에 실제 도움을 줄까? 인체공학자들은 이에 긍정적인 답을 던진다. 특히 중년 이상 나이들고 무게 나가는 사람들에게 주는 혜택은 엄청나다고. 내 지금 정확한 수치를 기억하지 못하지만 발및 무릎에 가하는 충격을 높은 정도의 비율로 감소시킨다 한다. 실제 써 보면 쓰지 않았을 때와 비교해 차이를 확실히 느낀다. 지난 번 호흐칼터에서 내려 올 때 픽켈을 가져갔기에 지팡이를 차에 놔 뒀는데, 적지 아니 고생했다. 특히 그리 힘든 투어 뒤에 내려오는 돌길은 진짜 가시밭 길이다. 덧붙여 돌산에서 심심찮게 겪는 돌밭길을 오르고 내릴 때 지팡이의 도움은 짜장 꿀맛이다. 특히 내려 올 때 마치 스키타듯 슬라롬 모습으로 내려오며 무릎 마사지를 하는 재미는 지팡이 없이는 맛볼 수 없다. 멈춤이 불가하니 말이다.
동네 산에 오를 땐 허나 오래 된 나무지팡이를 짚는다. 도사된 기분이 들어 홀로 웃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