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여름산행 시작
오랜 기다림 끝에 햇볕과 함께 30도를 넘보는 더위가 찾아온다는 일기예보에 드디어 본격적으로 알프스에 들어갈 때가 되었다는 기분에 휩싸였다. 비교적 쉬운 산행을 즐기며 올 ‘여름산행’을 천천히 시작할까 했다. 어쨌든 내 사랑하는 베르흐테스가덴 알프스 지역으로 달리기로 했다. 그래 지난 금요일 저녁 이런 저런 정보를 얻고자 즐겨 찾는 인터넷 산행 웹사이트를 뒤적거렸는데, 아니 바로 그 날 한 젊은 친구가 호흐칼터에 올랐다며 뽐내는 글과 사진을 올렸음을 봤다. 그것도 소위 ‘정상길’로 오르지 않고 빙하를 타고 오른 뒤 ‘정상길’보다 훨씬 더 힘든 암벽을 탔다고. 이미 오래 전부터 한번 찾고자 했던 코스라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단지 꽤나 힘든 코스라 시작을 천천히 하고자 함에 거역되는 산행이니 머뭇거릴 수 밖에. 궁리 끝에 마음을 가다듬고 내일 오르기로 했다.
이 경사를 타야 하니 픽켈은 필수다. 윗 중앙 바른쪽에 보이는 움푹 패인 곳으로 오른다.
유럽 알프스에서 위도상 가장 북쪽에 위치한 빙하다. ‘블라우아이스’라 불린다. 우리 말로 파란 어름. 몇 년 뒤에 허나 지구난동 현상 덕에 사라지리라 예견되는 빙하다. 넓이는 크지 않고 자그마하나 50도를 웃도는 경사를 자랑하기에 집중과 약간의 걷는기술 그리고 픽켈등 장비 없이는 매우 위험한 코스다. 작년에도 두어명 목숨을 잃었다. 단지 이즈음엔 빙하 위에 지난 겨울에 쌓인 눈이 여적 있기에 밟기에 편하고 특히 암벽과 눈밭을 잇는 지역에 틈이 벌어져 있지 않으니 혼자 오르기에 좋은 기회라 여겼다. 실제 또 그랬고. 한 여름에 눈이 완전 녹아버리면 얼음 위를 타고 올라야 하고 암벽과의 틈 역시 넓게 벌어져 버려 통상 자일조를 짜고 올라야 하는 곳이다. 허나 특히 지난 금요일 그 젊은 친구와 함께 한 무리가 그 코스를 밟았다 하니 바로 그 다음 날 오르면 빙하 위 눈밭에 발자국이 남아 있으니 내게 도움이 되고 덧붙여 방향 찾기가 쉽지 않은 암벽타기에도 어쩌면 도움을 받지 않을까 생각했다. 이 좋은 기회를 그냥 놓치기가 싫었다.
빙하를 타고 오르는데 아이젠은 꼭 필요하지는 않았는데 픽켈을 거의 필수였다. 경사가 급하니 찍으며 고정점을 만들면서 올라야 했기 때문이다. 젊은 친구 세명이 내 뒤를 따르고 있었다. 호흐칼터에 암벽타고 오를 작정이면 낙석 위험 방지를 위해 함께 오르자 제안하고자 했더만 자기네들은 빙하 타고 고개까지 오른 뒤 나와는 반대 방향으로 간다고. 얼었던 암벽이 따뜻한 날씨에 녹으며 유발시키는 낙석에 특히 이즈음 세심한 주의를 요구한다. 얼추 한 시간 암벽을 탔는데 다행히 내 앞과 뒤에 아무도 없었다. 두어번 방향을 잘못 잡았다만 위험하다고는 느끼지 않았다. 호흐칼터, 내 무척 사랑하는 산이다. 나는 이 산에 오르면 포근히 안기는 느낌에 흐뭇해진다. 그래서인가 보기에 험한 산임에도 직접 오르면 또 그렇지 않다. 정상에 도착하니 ‘정상길’을 통해 오른 몇몇 사람들이 나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어쩌면 별 희한한 데서 불쑥 나타나니 그랬던 모양이다. 더군다나 생긴 것도 자기네들과는 달리 ‘이상하니’ 말이다.
빙하에 맞붙어 있는 왼쪽에서 꼭대기로 오르는 경사가 암벽타기 코스다. 한 사람이 '정상길'을 밟고 있다.
내려올 땐 ‘정상길’을 탔다. ‘정상길’이라고 해서 쉬운 길은 아니다. 단지 방향 표시가 되어 있는, 공식적으로 권하는 산행길이란 뜻이다. 두어 군데 눈밭을 지나쳐야 했다. 내 앞에 가던 젊은 여자 둘이 가파는 눈밭 위에 주저 앉아 무서움에 내려가지를 못하기에 내 앞에 가며 층계를 만들테니 따라오라 했다. 근데 가만 보니 이 친구들 신발이 고산등산화가 아니었다. 무턱대고 덤볐다는 인상에 좀 더 고생을 해야 정신을 제대로 차리겠다 싶었다. 얼굴도 이쁘장 하니 웬만하면 오손도손 얘기하며 함께 내려갈까 하다 이 생각에 몇번 고맙다는 말을 뒤로 하고 홀로 발길을 재촉했다. 밑에 산장에서 얼추 한 시간 가량 휴식을 취했는데 이 친구들 내려오는 모습이 멀리서도 전혀 보이지 않았다. 산악구조대가 있으니 큰 위험은 없으리라 믿었다.
좋았다. 오랫만에 내 마음을 감싸는 산 속의 정적 또한 맛보았으니 행복할 수 밖에. 일상의 번거로움을 벗어 던질 수 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