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른슈핏쩨 능선타기
산행 모습들 중에서 꼭대기 서너개를 잇는 능선을 타고 걸음은 특히 감칠 맛이 난다. 사방팔방에 펼쳐지는 파노라마를 즐길 수 있어 그렇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능선의 암벽과 부딪치며 어울리는 재미에 그렇다. 군데 군데 발 한폭 넓이도 되지 않는 구간을 극복하는 짜릿한 맛도 있고. 독일 알프스에는 두 군데 거의 백미라 할 수 있는 능선타기가 있다: 하나는 베르흐테스가덴 지역의 상징적 산인 밧쯔만 능선타기이며 또 다른 하나는 독일 최고봉 쭉슈핏쩨에서 시작하는 능선타기가 있다. 특히 이 두번째 놈은 ‘기념축제능선’이라 불리는데 난이도 또한 거의 최고치에 이른다. 한 바퀴 도는데 걸리는 시간 또한 꽤 길다. 두 군데 모두 얼추 열시간은 잡아야 한다. 헬멧 착용은 거의 의무적이고.
내려오면서 뒤돌아 보이는 마지막 꼭대기다. 우뚝 뻗친 모습이 멀리서 보면 암벽타기가 불가능해 보이는 꼭대기이니 뿌듯하기도 했고 동시에 산 모양새가 꼭 이빨같이 튀어 나오니 웃음을 머금기도 했다.
능선타기 자체를 비교한다면 이 둘에 버금간다고는 말하기 힘드나 철만 되면 시도 때도 없이 적지 않은 사람들로 붐비는 두 곳에 비해 구름 한 점 없는 화창한 여름날씨에도 나 혼자 전 지역을 만끽할 수 있는 능선타기를 즐겼다. 아른슈핏쩨 능선타기, 세 봉을 잇는 능선인데 가장 높은 산이 2196m이니 위 두 능선타기에 비해 뚜렷할 정도로 다소곳함을 보인다. 상대적으로 그렇다는 말이지 쉬운 코스는 절대 아니다. 더군다나 위 둘과는 달리 길 표시가 전혀 되어 있지 않은 곳이라 어느 정도 산길을 읽을 수 있어야 제대로 즐길 수 있다. 당해 보니 알겠던데 땅에 붙어 자라는 왜송밭을 헤치며 길을 찾기가 꽤 어려웠다. 덧붙여 두어군데에선 낭떠러지를 피해 돌아가야 했다. 능선타기에서는 되도록이면 능선을 타고 걸음이 힘과 시간을 절약하는 첩경이나 그렇다고 무턱대고 이를 고집하면 크게 다치거나 생명을 잃을 수도 있다. 바로 낭떠러지 때문이다. 이 경우 왼쪽과 바른쪽을 살펴 적당한 선을 찾아야 하는데 이번 능선타기에선 예외없이 왼쪽 즉 남쪽을 바라보니 돌밭이 펼쳐져 있고 바른쪽 즉 북쪽을 보니 자그마한 골이 이어져 있음을 발견했다. 당연 골을 타고 내려가 돌으며 낭떠러지를 피했다. 경사가 돌밭보다 급하나 질퍽거리지 않고 산뜻한 맛이 내 구미에 맞기 때문이었다.
마지막 꼭대기에 올라 우선 항상 그리 하듯 꼭대기 십자가에 뽀뽀를 하고 사방으로 한번씩 소리를 질러댔다. 쉽지 않은 산행을 드디어 아무 사고 없이 거의 마무리 짓고 내려갈 참에 내 저지르는 짓이다. 세상이여 내가 여기 있음을 알라 하는 뜻이 아니라 세상이 내 마음 속에 심어 준 응어리를 다시 뽑아 돌려 주는 모습이다. 내 속을 비우는 모습인 게다.
능선타기를 시작하며 보이는 모습이다. 왼쪽에 있는 게 '가운데 꼭대기'이고 뒤쪽으로 마지막 꼭대기가 펼쳐져 있다. 이 꼭대기에 오르는 길은 사진에 보이는 양지와 음지 경계 부근에 있다. 왜송 숲을 헤쳐야 한다. 이 꼭대기 왼쪽 뒤로 펼쳐지는 계곡이 유명한 '가이스 계곡'이다. 지난 세기 전반 작가 호프만스탈과 작곡가 스트라우스가 함께 거닐며 철학과 예술에 대해 담화를 나눈 장소로 알려져 있다. 보면 실제 뛰어난 장소다. 쭉슈핏쩨 남쪽으로 오스트리아와 독일의 경계 지역이다.
근데 내려가는 길은 또 왜 그리 엄청 길더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