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흐파일러(3510m)
유럽 알프스를 동서로 가르면 통상 스위스와 오스트리아 경계로부터 동쪽으로 이어지는 지역을 동부알프스, 그 반대 쪽을 서부알프스라고 이름짓는다. 유명한 인스부르크 알프스 일기예보 또한 이를 기준으로 알리고 있다. 반면 남북으로는 통상 세 지역으로 가른다: 북부, 남부 그리고 중부 내지는 중앙알프스. 북부는 대개 석회암으로 이루어진 산악지역이며 높이는 이 지역에서 가장 높은 파르자이어슈핏쩨를 제외하곤 전부 3000m 이하다. 남부는 대부분 이탈리아 북부 지역, 소위 ‘남부티롤’지역의 산악을 가리킨다. 중부 내지는 중앙알프스는 문자그대로 알프스 전 지역의 중앙부를 차지하고 있으며 따라서 ‘핵심줄기’라는 표현을 붙이기도 한다. 3000미터 이상되는 산들이 어깨를 나란히 하며 자신들의 자태를 뽐내고 있는 곳이다. 돌들 또한 북부의 석회암과는 달리 대부분 어두운 색깔을 띠고, 때론 보석과 같이 반짝거리는 표면을 나타내거가 심지어 검은초록색으로 덮여 있는 돌들 이다. 가끔식 하얀 자연대리석 또한 자신의 자태를 으시대고 있음을 보았다. 그리고 빙하 내지는 만년설, 실컷 봤다.
한여름에도 날씨가 급변해 눈이 쌓이는 날이 드물지 않다. 이 경우 아이젠을 신고서야 능선을 따라 오를 수 있다. 왼쪽, 즉 북쪽 벽은 경사가 급하고 만년설이 쌓여 있어 이 쪽으로 오르려면 장비를 제대로 갖추어야 한다.
산 이름이 Hochfeiler다. 오스트리아 티롤지방과 이탈리아 북부 '남부티롤' 지방 경계선 위에 버티고 있다. 이 지역을 찔러탈러 알프스라 부르는데 호흐파일러는 이 지역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고속도로를 타고 인스부르크를 지나 남쪽으로 이탈리아를 향해 달리는 브렌너 구간 - 통행료가 무려 8유로! -을 통과한 뒤 이탈리아에 들어가 왼쪽으로, 그러니까 동쪽으로 스테르징이라는 자그마한 시로 빠진다. 여기서부터 산행주차장까지 꽤 달린다. 나중에 비포장 산길을 타고 오르면 해발 1708m 지점에 주차장이 있다. 산장이 2710m 높이에 있으니 1002m 높이를 올라야 할 판이다. 나 혼자라면 까짓 얼추 두 시간이면 가겠다만 근 15킬로 무게의 딸아이를 등에 엎고 오르자니 만만치 않았다. 혼자 가고자 했는데 이즈음 휴가 중인 아내의 눈치가 예사롭지 않아 모두 함께 가기로 했다. 비엔나에서 혼자 사는 큰 딸아이는 바쁘단다. 펼쳐지는 모습들이 북부 알프스와는 진짜 달랐다. 돌들 모양새와 색깔도 그렇지만 암벽이 이루어내는 선들 또한 달랐고, 무엇보다도 그 크기가 자아내는 위세가 확실히 강하긴 했다. 그렇다고 산행이 더 힘들다고는 보지 않는다. 오히려 더 쉽지 않나 싶을 정도다. 허나 무엇보다도 빙하가 자아내는 거칠은 물흐름은 퍽 인상적이었다.
자그마한 산장인데 젊은 사람들이 참 친절하니 좋은 인상을 주었다. 언어는 이탈리아어, 남부티롤 사투리 그리고 독일어 모두 구사하더만. 산장 뒤로 점차 작아지는 빙하 지역을 엿볼 수 있다.
딸아이와 함께 놀면서 가느라고 예상보다 두 배 이상 걸린 오름 끝에 산장에 다달았다. 산장 이름 또한 호흐파일러다. 산장에서는 꼭대기가 보이지 않으나 오르면서 살짝 비친 꼭대기 모습을 봤는데 듣던대로 이즈음 여름 날씨에 오르는 능선을 중심으로 북쪽으론 빙하와 만년설에 덮여 있고 남쪽으론 아이젠과 픽켈 없이도 오를 수 있는 선을 보였다. 다음 날 나 혼자 꼭대기로 발길을 옮겼다. 아내와 딸아이는 산장 바로 옆에 있는 자그마한 - 그래도 얼추 2800m 높이다 - 꼭대기에 오르고.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날씨를 산 위에서 만끽하고자 적지 않은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코스가 그다지 어렵지 않아 문자 그대로 남녀노소로 이루어진 다양한 모습이었다. 3000미터 이상 되는 산위에선 날씨가 급변하곤 하는데 오늘은 그런 기색을 전혀 엿볼 수 없었다. 능선 양쪽으로 펼쳐지는 빙하와 만년설 모습 또한 볼만 했고, 덧붙여 이 곳에 산재한 특이한 돌들로 사람들이 일부러 꾸며 만든 소위 ‘돌정원’ 모습에 잠시 취할 수 있어 좋았다.
돌정원, 퍽 인상적이었다. 이런 돌들을 이 지방에선 지붕 기왓장으로 쓰기도 한다.
내려오며 아내한테 만족스러웠냐 조심스레 물으니 오르며 한번 쉴 때 먹이를 찾고 있는 독수리를 볼 수 있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이번 산행의 보람을 충분히 찾을 수 있다고. 참, 소박하니 고마운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