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프스 이야기

쇄르텐슈핏쩨 (2153m)

서동철 2011. 5. 23. 22:47

왼쪽에 우뚝 솟은 산이 쇄르텐슈핏쩨다. 


그 때 그 자리에 멈춰 섰다. 주차장에서부터 시간 반 정도 걸었나. 일년 전 그 자리에서 나를 엄습했던 느낌을 다시 맛볼 수 있을까 무척 궁금했다. 이를 확인함이 또한 오늘 산행의 주목적이기도 했고. 일년 전 이맘 때쯤 베르흐테스가덴 지역 Schärtenspitze를 찾았었는데 이번 과는 반대방향으로 돌았던 산행이다. 올해보다 더 많은 눈이 쌓여 있었던 매우 가파른 지역을 벗어나 내려오는데, 한 곳에서 목을 축이고자 잠시 쉬었다. 근데 거의 갑자기 나를 덮치듯 찾았던 기분이 있었다: 아, 이 곳에서 죽고 싶구나. 주변에 막 피어오르는 가지각색의 꽃들을 바라보며 나 혼자 만끽했던 그 정겨운 산 속의 정적에 휩싸여 이런 기분에 젖어보니 한편으론 무척 당황스러웠고 또 다른 한편 어쩌면 환한 기쁨의 미소를 짓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 한 동안 그 자리에 앉아 미묘한 분위기에 빠져 있을 수 밖에. 바로 이 느낌을 올해에도 맛볼 수 있을까 알고자 했다. 잠시 지나가던 기분에 혹 했던 것인지 아니면 그 곳이 짜장 내게 특별한 뜻을 던지고 있는지 말이다. 사실 5월 중순인 이즈음에도 눈덮힌 급경사가 버티고 있어 7월쯤 되야 제대로 된 산행길을 걸을 수 있는 곳임에도 내 일부러 찾았던 게다. 성질 급한 놈 어디 가나 고생한다. 근데 막상 닥쳐 보니 그 기분이 더 이상 들지 않았다. 일부러 주변을 한 바퀴 도는 등 짬을 냈음에도 일년 전 그 느낌은 한 순간의 모습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사실 내 이 젊은 나이에 - 크 - 벌써 죽음을 떠올림은 시건방진 모습이다. 


가파른 눈길을 오르는데 엊그제 내린 비에 발자국 흔적이 남아있을 리가 없었다. 그래 더욱 조심조심 눈밭을 발로 내리 찍듯 걸어야 했다. 능선에 올라 정상까지 얼추 30분 동안 이미 안면이 있는 양쪽 산들에 눈짓을 해대며 걸었다. 밧쯔만, 호흐칼터 등등. 정산 언저리에서야 처음으로 한 사람을 보았다. 그러니까 네시간 여동안 오른 산행에서 오로지 나 혼자였다는, 힘은 들었어도 바로 이 점 때문에 썩 마음에 드는 매력적인 산행이었다. 

  

내려오면서 산 바로 아래에 있는 산장을 찾았다. 차와 케잌을 주문했는데, 소문대로 일인분 케잌 크기가 일반 빵집의 두배 이상이었다. 맛 역시 뛰어났고. 무엇보다도 일하는 사람들이 친절했음에 마음이 흐믓했다. 주말에 남편과 아빠 없이 보내는 아내와 딸아이가 떠올라 두 가지 종류의 케잌을 골라 싸달라 했다. 집에 와서 풀어보니 덤으로 한 조각 더 싸서 내게 건넸음을 알았다. 아내와 딸아이와 함께 빠른 시일 내에 그 산장 다시 찾기로 했다. 그러면 아내와 딸아이는 알프스에서 위도상 가장 높은 위치에 있다는 블라우아이스 빙하를 밟으며 구경하고 - 몇 년 뒤에 지구난동 현상에 따라 이마저 사라진다는 소문이다 - 나는 혼자 호흐칼터를 올라갔다 내려오고, 오후에는 함께 차와 케잌을 만끽하고. 일박을 하는 경우엔 지는 햇님과 떠오르는 햇님께 큰절 올리고.  


블라우아이스 산장이다. 가운데 보이는 눈밭이 블라우아이스 빙하고, 바로 그 뒤에 우뚝 솟은 산이 호흐칼터(2607m)다. 바른쪽으로 능선까지 오른 뒤 능선 타고 정상에 다다른다. 왼쪽에 정상이 보이지 않는 돌뭉치가 쇄르텐슈핏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