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편지

열세번째 편지 - 만남과 사랑

서동철 2011. 1. 30. 03:10

Sabine, 어머니 둘째 며느리와의 만남은 제게 있어 복이었습니다. 사실 처음 만났을 오히려 반대가 되지 않을까 걱정도 했습니다만, 특히 결혼한 철학자는 넌센스다라는 니이체의 말이 자꾸 떠올라 말입니다. 허나 함께 몸을 섞고 살다보니 니이체의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차치하고라도 저의 구체적 삶에 있어 작지 않은 위로가 되고 있음은 뚜렷해지더군요. 제게는 참으로 고마운 사람입니다.  


그녀와의 첫만남은 기숙사 복도에서 이루어졌지요. 그녀가 제가 살고 있던 층으로 이사들어오는 날이었습니다. 마침 부엌에서 설겆이를 하고 있었는데 아리따운 독일 여자아이가 이삿짐을 들고 복도로 들어오며 나르고 있더군요. 그래 당연히 냉큼 달려 도와주겠다 했더만 짐이 많지 않아 필요없다며 자기소개를 하던데, 순간, 그녀의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보는 순간하며너구나하는 생각이 뒷통수를 쳤지요. 아내가 젊었을 때의 모습을 난생 처음으로 코앞에 마주했는데, 특히 눈이 인상적이었어요. 파란 눈에 거짓이 없는 빛이었다고나 할까, 실제 눈에 제가 반하기에 충분한 아름다움이었습니다.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에 마음 씀씀새는 틈이 없었지요. 회춘이라 말하면 시건방진 나이였으나 그렇다고 사춘기를 십년 넘게 뒤로 재껴버린 나이였기에 거울에 비친 순간들의 모습에 스스로 놀라곤 했습니다. 이런 경우 한사코 기다리고만 있지 못하는 성격이기에 당연 나름대로 적극적인 공세를 펼쳤지요. 마침 독일말글을 배우고 있던 참에 독일아이들의 도움이 필요했으니 이를 핑계로 시도 때도 없이 그녀한테 말을 걸었습니다. 덧붙여 그녀가 나의 이러한 손길을 잠깐이나마 쓰다듬어 주었을 느닷없이 제가 식사에 초대하곤 했지요. 한국식사는 혼자 먹기 보다는 최소한 둘이 함께 먹어야 맛이 난다는 진리를 거듭 외쳐가면서 말입니다. 호박전, 미역국, 잡채밥 등등이 제가 만들어 선보였던 메뉴판이었지요. 근데 이러한 모습으로 더욱 가까이 부딪치면 칠수록 그녀는 어째 더욱 매력이 뻗치더군요. 알면 알수록 이런 저런 싫은 모습도 보이니 때론 실망을 머금는 인지상정인데, 그녀는 이런 점에서도 제겐 특별한 여자였습니다. 그녀의 눈이 제게 보였던 나이에 걸맞지 않는 천진난만함 때문이 아니었을까 추측은 해봅니다만. 공부요? 그녀와 이런 저런 말을 나눔 자체가 당시 독일말글을 하루라도 빨리 습득해야만 했던 처지에선 공부 자체, 소위 말하는 산공부였으니 아무 거리낌없이 오히려 열심히 그녀와의 만남을 바랬으며 제게 정신적 물질적 도움을 주셨던 어머님께도 아무 죄송스런 마음 품을 필요가 없다 자신했습니다. 연애도 하고 공부도 하고, 일석이조였던 게지요


허나 돌이켜보면 처음 동안은 저만의 짝사랑이었습니다. 그녀에겐 머나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서 철학을 공부하러 독일까지 별난 놈이기에 호기심이 일어났고, 그러니 바로 이러한 호기심에서 재밌다 하는 생각에 저의 제안에 선뜻 응했다고 나중에 제게 귀뜀을 하더군요물론 역시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일부러 모른 했을 따름이지. 그래도 언젠가는 마음을 반만큼이라도 쏟겠지 하는 희망을 품고서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