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방

주역 단상

서동철 2011. 1. 20. 00:01

김 선생님, 


왜 하필이면 주역이냐, 지금 21세기의 우리들에게 기원 전의 그 고리타분한 책이 시사하는 바가 과연 무엇이 있겠는가 하는 며칠 전 님의 질타는 제게 다시 한번 이에 대한 생각을 모아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때의 만남 이후, 계절이 변했습니다, 별고 없으신지요? 질문을 던지셨음에 이제 막 주역 공부를 시작한 제가 염치 불구하고 감히 이에 대한 짧은 말씀 드립니다. 

맞습니다. 주역은 굉장히 오래 된 책입니다. 기록상 3000여년의 역사를 가진 동양 고전중의 고전입니다. 전설적으로는 허나 그보다 훨씬 이전인 지금으로부터 5000여년전 중국 문화의 시조라 일컫는 복희씨가 땅과 하늘, 즉 자연 천문 현상의 주도면밀한 관찰을 통해 팔괘라 칭하는 여덟가지 부호를 만들었다 합니다. 사람은 하늘의 뜻에 따라 살아야 된다는 당위적 생각에 그 뜻을 알고 전달하고자 해서였습니다. 문자가 없던 시대에 이의 역할을 담당했다 볼 수도 있고요. 예컨대 우리 대한민국 국기에 그려져 있는 네가지 부호는 바로 건,곤,감,리라 불리는 팔괘중의 네가지 괘들입니다. 

이후 이러한 전래된 팔괘를 같은 목적하에 허나 동시에 더욱 복잡해진 시대에 맞추어 확장 심화시킨 인물이 바로 문왕입니다. 지금으로부터 3000여년전 팔괘를 서로 짝지워 64괘를 만든 장본인입니다. 이로써 주역의 기본 골격이 세워졌습니다. 그후 그의 아들 주공이 각 괘의 육효에, 즉 모두 합쳐 384효에 각각 해석을 붙였으니 지금 우리가 읽을 수 있는 효사가 바로 그것입니다. 주역이 주역인 이유는 바로 이 두 성인들이 주나라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즉 주나라의 역이란 뜻이죠. 

그후 이 주역을 통상 유교의 사서오경중의 한 경인 역경으로 정립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성인이 바로공자입 니다. 공자는 고령의 나이에 주역을 접한 후 그 주역책을 묶은 가죽끈이 세 번씩이나 끊어질 정도로 열심히 공부했다 합니다. 그 공부 결과를 우리는 십익이라 불리는 주역 해설서에서 접할 수 있습니다. 통상 이 네분들을 주역의 사대 성인이라 일컫습니다. 

주역과 우리 한민족과의 관계는 통상 알려져 있는 동북아시아 문화권 내의 교류 이상의 의미가 함축되어 있습니다. 주역의 뿌리가 우리 민족 최고의 경전인 천부경에 있다는 주장이 있을 정도입니다. 단지 이에 대한 왈가왈부는 제가 더 공부를 한 연후로 미루겠습니다. 제가 허나 말씀드리고자 하는 바는 주역의 근본 사상인 음양관이 우리의 구체적 생활 속에 깊게 뿌리 내려 있다는 사실입니다. 남녀 한복도 음양관에 의한 디자인이요, 우리의 음식 문화 또한 음양관에 힘입은 바가 큽니다. 중국인들이 국물까지도 젓가락으로 먹는 반면 한국인들은 숟가락과 젓가락을 동시에 사용합니다. 젓가락은 양이요 숟가락은 음이라 생각하며 음양의 조합으로 보다 더 완벽한 식생활의 모습을 보이는 것이지요. 이외에도 적지 않은 예들을 말씀드릴 수 있으나 오늘 제가 님의 귀중한 시간을 너무 많이 뺐으니 죄송스러우매 다음 기회로 미루겠습니다. 허나 다음의 점술에 대한 말씀만큼은 오늘 꼭 드리고 싶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주역과 점술 

며칠 전 제게 주역과 점술의 상관관계에 대해 물으심에 무척 당황했습니다. 이제 겨우 이 책을 펼쳐 공부하기 시작한 제가 감히 이런 질문에 답할 자격은 차치하고 능력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부하는 마음으로, 다음의 짧은 말씀을 드립니다. 

최근 한국에서는 동양학 전반에 대한 관심의 고조에 힘입어 주역에 대한 관심 또한 높아지고 있다고 합니다. 특히 이 주역은 미래를 미리 알고자 하는 어쩌면 인간의 본능적 욕심을 채워줄 수 있는 책이라 우리한테는 알려져 있어 그 관심의 도가 특히 높은 듯 합니다. 서양의 점성술에 대한 관심을 참작하건대 해마다 연말연시에 한국인들이 점쟁이들에게 쏟는 돈의 액수가 엄청나다는 소리를 이해 못할 바도 아닙니다. 단지 그렇다고 해서 주역이 점쟁이라는 직업을 위한 전문서적이냐, 그건 절대 아닙니다. 만약 그런 얄팍한 책이라면 세계 사대 성인으로 칭송되는 공자 님께서 고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주역 책을 묶은 가죽끈이 세 번이나 끊어지도록 공부하셨을 리가 없습니다. 물론 점치는 것과 전혀 상관이 없다는 말씀은 아닙니다. 단지 주역은 그 이상의 내용이 들어 있는 동양의 고전임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주역은 점서요, 정치서요, 경제서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철학서이자 수행서입니다. 읽는 사람의 입장에 따라 이리 각 방향으로의 해석이 가능한 심오한 책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황, 이이, 정약용, 최제우 등의 대한민국의 역사상에서 내노라 하는 석학자들 또한 이를 연구했습니다. 특히 다산 정약용 선생은 스스로 자신의 주역에 대한 저술을 자신의 방대한 저술 작업 중 가장 중요한 작업이라고까지 말씀하셨습니다. 바로 이 다산 선생은 "수십 년 동안 역을 연구했지만 나 자신의 일을 가지고 점을 쳐보지는 않았다"는 말씀을 남기시기도 하셨습니다. 

주역은, 말씀드렸다시피, 점서이기도 합니다. 주역에 힘입어 점을 칠 수 있습니다. 또한 실상 그렇게 어렵지도 않습니다. 소위 현대 역점이라 불리는 적지 않은 새로운 점치는 방법들이 소개되어 있기도 합니다. 허나 어떤 방식으로 점을 치시든 최소한 다음의 세 가지 점에는 항시 유념하셨으면 합니다: 

하나, 점치기 전 충분한 고찰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님께서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각도에서의 주도면밀한 고찰을 한 연후에도 판단이 잘 서지 않을 때 점을 통해 도움을 구해야 됩니다. 일반적으로 말씀드리자면, 인간이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경주한 연후에 그래도 풀리지 않을 경우 하늘의 도움을 청해야 된다는 말씀입니다. 

둘, 같은 것을 두 번 점쳐서는 되지 않습니다. 
한번 나온 점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두 번 세 번 다시 친다함은 이는 신성한 점에 대한 모독입니다. 즉 인간의 힘에 좌지우지 될 수 없는 점의 영역에 강제로 그 힘을 적용시켜보겠다는 신성 모독적 사고 방식인 것입니다. 그런 점은 맞을 리가 없습니다. 

셋, 부정한 일을 점쳐서는 되지 않습니다. 
주역은 철학서요 도덕서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점을 친다함은, 위에서 말씀드렸다시피, 하늘 내지는 성인의 말씀을 듣고 그에 따른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럴진대 나의 사사로운 사리영달을 위해, 예컨대 사업운, 연애운, 심지어 주식운 등등은 아둔한 이들의 한갖된 장난에 불과할 따름입니다. 까짓 점이나 한번 보자는 식의 사고로는 제대로 된 점이 나올 리가 천부당 만부당합니다. 참고로 점을 한자로 占이라 쓰는 바 이를 풀어헤치면 ㅣ 는 하늘에서 땅까지의 이치를 뜻하고 그 가운데 한 획 ㅡ 는 그 이치중에서 한가지 물음을 틀림없이 찍었다는 뜻이며 ㅁ 은 그리 점친 것을 입으로 전한다는 뜻입니다. 이리 보매 점은 결코 미신이 아닙니다. 신 내지는 하늘과 인간의 엄숙한 대화가 바로 점의 올바른 뜻입니다. 독일어의 Orakel 또한 이런 뜻을 함축하고 있습니다. 

천학비재한 제가 감히 주역에 대한 말씀을 드리니 송구스러울 따름입니다. 이 어리석은 자 님의 화사한 하루 합장 기도 드립니다. 

안녕히 계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