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방

한 그림엽서의 가르침

서동철 2010. 11. 28. 21:01

대만에 나들이 가신 나의 큰 님으로부터 소식을 받았다. 위 그림엽서가 그것이다. 눈에 띄는 모습은 허나 유유자적 물 위를 흘러가는 까까중 뿐만 아니라 바로 그 밑에 도사리고 있는 글귀다: 

君子如水 隨方就圓 無處不自在 
(군자여수 수방취원 무처부자재) 

뭔 뜻이냐? 
우선 이 엽서 뒷면에 박힌 해답을 소개한다. 여행객들을 위한 엽서라 그런지 영어로 써 있다: 
A gentleman is like water, which takes the shape of the container into which it flows; he is comfortable in any situation. 

허나 이 해답이 정말 옳은지 우리말로 다시 한번 면밀히 검토해 본다: 

전체는 세 문구들로 이루어져 있는 바 이를 병렬로 이해하기 보다는 오히려 그 중 첫 번째 문구는 큰 제목과 같은 역할을 담당하는 하고 이어지는 두 문구들은 이에 대한 설명으로 해석할 수 있을 듯하다. 즉, 군자는 물과 같으니 ... 인바, 그럼 여기서 '물과 같다'는 말이 과연 어떤 뜻을 품고 있는가에 대한 답이 다음의 두 문구들이 제시하는 모습이다. 

수방취원이라, 각을 따르나 원을 취한다, 즉 물이 굽이굽이 흐르나 그 흐름 자체는 원만하니라 하는 말로 들린다. 굽이굽이 흐르고 또한 원만하니라 할 수도 있겠으나 흐르는 강물의 모습을 역설적으로 바라보고자 하는 전자의 이해가 더 훌륭하지 않나 싶다. 위 영어적 해석에는 이러한 역설의 모습이 흐릿하다. 

무처부자재라, 우선 형식적으로 보건대 이중부정이다. 자재하지 아니하는 곳이 없다는 뜻이다. 단순 긍정으로 자재한다 하지 않고 이중부정으로 자재를 더욱 강조하는 모습이다. 이러한 이중부정적 강조의 모습 또한 위 영어적 해석에는 결여되어 있다. 아무튼 핵심은 결국 자재(自在)가 무슨 뜻인가에 달려 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自由自在의 준말이다. 속박이나 장애 같은 것이 없이 사는 모습을 말한다. 거추장스럽고 걸기적 거리는 방해물이 물적으로 뿐만 아니라 심적으로도 없는 대자유의 모습을 그리는 말이다.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어쩌면 이상적으로 보일지도 모를 모습이나 군자에게는, 君子라면, 이는 다름 아닌 일상생활의 모습과 다를 바 없다는 말로도 들린다. 

그래 결국 한 문장으로 요약해 보면, 
군자는 물과 같으니라 - 굽이굽이 흐르나 그 흐름 자체는 원만하매 자유자재하지 아니하는 곳이 없구나. 

...... 

그런데 사실은 이러한 문구 해석보다 훨씬 더 중요한 물음이 있다: 
나는 과연 군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