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tersberg Klettersteig(운터스베르그 자일암벽타기)
멀리 뒤로 밧쯔만이 보인다.
구조대를 부를까 하는 생각을 했다. 아까 오르면서 보니 헬리콥터 착륙장까지 만들어 놨던데. 산행하며 이런 생각을 한 순간이나마 품었던 적은 처음이다. 힘이 부쳤으니 말이다. 팔뚝 힘이 모자라 암벽에 고정 설치되어 있는 안전자일에 아예 겨드랑이를 걸치고 발걸음을 옮겨야 했다. 더군다나 오름길이 길긴 또 왜 이리 길더냐. 코스 끝나나 하면 또 새로 뻗치고, 징하니 참 막막하기까지 했다. 그렇다고 다시 내려가자니 더 쉬울 듯하지는 않고. 어쪄, 이를 악물 수 밖에.
암벽타기 오르는 길 지도다. A, B, C 그리고 D등은 오스트리아에서 발안한 자일암벽타기 난이도 구분이다. 통상 D는 '매우 어려운 코스'로 인지된다. 물론 날씨가 맑고 건조한 상태를 바탕으로 한다. 비가 내리거나 축축한 상태에선 그러니까 최소한 난이도 E는 될 게다.
운터스베르그, 베르흐테스가덴에서 오스트리아 잘쯔부르그로 이어지며 우뚝 버티고 있는 덩치 큰 산이다. 높이는 2000미터도 채 되지 않으나 면적이 넓어 이런 저런 다양한 모습에 전설 또한 뒤범벅 되어 있어 뭇사람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다. 심지어 한 쪽 구석엔 독일에서 가장 큰 얼음동굴이 자리하고 있는데, 몇십만년 전의 얼음이란다. 믿거나 말거나. 입장료 6유로 내면 들어가 보고 만지고 할 수 있다. 주봉으로 오르는 길이 서너개 되는데 이 중 동쪽 암벽을 타고 오르는 길을 밟았다. 사실 길이라 하기엔 좀 뭐하고, 90도 경사가 판치니 말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이미 설치된 안전자일에 개개인이 카라비너를 걸며 암벽을 타고 오르는 그런 ‘길’이다. 통상 두 명 이상이 자일조를 짜서 서로의 안전을 뒷받침하며 오르는 그런 소위 고전적 암벽타기가 있는 반면 각자가 자기 안전에 홀로 100퍼센트 책임을 지며 오르는 그런 자일암벽타기 또한 있다. 이에는 물론 카라비너 달린 자일이 연결되어 있는 안전벨트와 헬멧등을 착용해야 한다. 인위적으로 만든 길이기에 난이도 또한 의도적인 조절이 가능하다. 운터스베르그 암벽타기는 어려운 코스에 속한다. 더군다나, 이는 내 실수였다 여긴다만, 비온 날 바로 뒤에 올라 암벽상태가 축축했으니 미끄러지는 등 힘이 더 들었다. 인기 좋다는 이 코스에 왜 그 날 나 혼자 뿐이었는지 그 이유를 나중에서야 알았다. 각자가 스스로 자기 어리석음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하느니.
서너번 힘이 부쳐 밑으로 미끄러져야 했다. 이 와중에 암벽에 팔뚝 살갗이 까져 피를 뚝뚝 흘리며 안간힘을 써야 했다. 산행 중 피를 결국 보고 만 셈이다. 중간쯤 올랐을 때 다시 내려가자니 그 또한 뭐하고 오르자니 힘이 부족할 듯하고, 서 있는 모습이 발을 디뎠다기 보다는 겨드랑이를 자일에 걸쳐 매달려 있는 모습이니 구조대 생각이 떠오른 게다. 카라비너야 떨어짐을 방지하는 수단일 뿐이니 오르는 덴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리도 또 왜 이리 암벽이 미끄럽더냐. 그래 몇 번 악을 쓰고 다시금 마음을 다졌다. 암벽타기에 갖고 있는 내 소박한 힘과 기술을 몽땅 써야 했다. 때론 문자 그대로 기면서 올랐다. 대체로 맑겠다던 날씨는 짙은 구름이 산에 걸려 있는 상태로 축축한 기류를 선보이고 있었다. 그런데 내가 누구냐, 의지의 한국인, 그런 날씨에, 더군다나 꼭대기에 오른다고 뭐 선물 받는 것도 아니고, 오로지 한국인의 의지를 뽐내고자 하는 그런 짓을 내가 저지르고 있었으니, 참 미련한 놈이다. 최소한 그런 짓 다시 하라면 고개를 설레 짓겠다는 다짐은 하고 있다.
내려올 때 통과했던 동굴이다. 참 기묘한 '산행코스'다. 이름 또한 특이하다: '한낮구멍'.
꼭대기를 밟으니 바람이 세차게 몰아치며 나를 떠밀었다. 빨리 내려가라는 소리로 들었다. 그래 빨리 하산코자 정상길을 옆에 제쳐 두고 꽤 큰 동굴길을 골랐다. 정상길이 돌아가는 길이라면 이 굴길은 위에서 아래로 곧장 내려가는 그런 길이다. 다행히 안전자일이 설치되어 있어 굴러 떨어지지는 않았다. 한참을 내려 오니 야생 산양 한 마리가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모습을 알아챘다. 원 별난 놈이 오늘 같은 날 이런 데를 찾았구나 하는 그런 빌어먹을 모습이었다. 아무 말 않고 그냥 내 길을 걸었다. 한눈 팔 힘도 없었고, 오로지 마음의 평화만큼은 지키고자 했다. 너 같은 짐승새끼가 사람의 속내를 어찌 알긋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