툇마루
"어눌하십니다 그려."
서동철
2010. 10. 20. 23:07
괘씸한 님,
오늘 그 누이한테 들었는데, 님이 어디선가 저를 두고 "어눌하다"고 말하셨다고요.
듣는 순간 무슨 뜻의 말인지는 확실하지 않았으나 전후 맥락으로 보아 좋은 말은 아니다 싶은 感은 있었지요. 그래 제가 욕을 듣고는, 더군다나 믿고 있던 사람한테, 그것도 내 사랑한다고까지 고백했던 사람한테 이런 소리 들으니 괘씸하고, 후레 자식 욕도 나오고, 오랜 옛날 까불락거렸을 때의 아주 심한 욕도 목구멍에 걸리고, 그래 이리 분풀이라도 해야지 그렇지 않다간 화병으로 도질 듯하니 헤아려 주시기를. (지금 막 자려다 분에 넘쳐 눈이 제대로 감기지 않아 이리 자판기를 마구 마구 무식하게 두드립니다.)
첫째, 저는 특정인을 제 삼자 앞에서 왈가왈부 함 그 자체를 혐오하고 증오합니다. 이왕지사 하려면 좋은 얘기를 하든지, 아니면 말든지. 아니 무슨 연유로, 뭘 말하고자 했길래 남이 어쩌니 저쩌니, 아니 그리 할 말이 없었나요? 아니 망말로 남이사 이런들 어떻고 저런들 어떠리 걍 지나치면 어디 덧나요? 저는 그렇게 할 일이 없을 땐 제 콧구멍을 후빈답니다.
둘째, 어눌하다는 語訥하다로서 큰 사전 왈: "말이 굳어 부드럽지 못하고 떠듬떠듬함." 이라 하는군요.
그럼 訥은 무슨 뜻인고? 이 한자는 두 가지 뜻이 있는 바, 그 하나는 말 떠듬을 눌이요, 또 다른 하나는 말 적을 눌, 그러니까 입이 무거워 말을 잘 하지 않음을 뜻하지요. 예컨대 우리 孔丘께 서 말씀하시기를,
君子欲訥於言, 而敏於行
이라 했지요 (論語 里仁篇). 四字成語로 訥言敏行이라고도 말하는 바,
- 이는 군자는 말에는 더디고 실천하는 데에는 민첩하고자 한다는 뜻이니, 말은 쉽게 내뱉을 수 있으니 어렵게 하고, 이에 반해 실천은 어려우니 민첩하고자 해야 한다는 가르침입니다. 그래 제가 항시 염두에 두는 공구님의 말씀이기도 하지요.
그런데 그런 訥字를, 제게 이런 엄청난 가르침을 주는 문자를 님의 입을 통해서 되려 저를 욕하고 꾸짖는 뜻으로 받았구나 생각하니 참으로 하늘이 울고 땅이 통곡하는 지경이 아닙니까?
그렇다고 치사하게 이제와서 미안하다 하지 마십시오. 미안해 하는 사람이나 그 미안 받는 사람이나 모두 치졸해지니 말입니다. 엎지러진 물입니다. 담으려 하기 보다는 마르기를 기다릴 뿐이지요. 날씨가 이리 구질구질하니 마를 날이 언제 올지는 감조차 제대로 잡히진 않지만...
바로 그 里仁篇 마지막 구절의 공구님 가르침이 연쇄 반응적으로 떠오르는군요:
事君數이면 斯辱矣요 朋友數이면 斯疏矣니라
- 임금을 섬김에 자주 간언하면 욕을 보게 되고
벗을 사귐에 충고가 잦으면 사이가 멀어진다
이 정도 되받아치니 이제사 겨우 잠은 청할 수 있을 듯하니 그만 두렵니다.
근데, 근데,
사실 저 역시 물론 남 말 한 적 있지요. 허나 이는 제가 저 자신을 혐오하고 증오했다는 반증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음을 고백합니다.
글고 마지막 공구의 가르침 역시 해당이 되지 않는게, 님의 충고는 煩數가 아니었지요. 오히려 처음이었죠?
그런데 제가 지금 무슨 헛소리를 이리 지껄입니까? ^^*
아니면, 아니면 나는 진정 어눌한가? 오호라, 통재라!
또 뵙겠습니다.
건강하십시오.
오늘 그 누이한테 들었는데, 님이 어디선가 저를 두고 "어눌하다"고 말하셨다고요.
듣는 순간 무슨 뜻의 말인지는 확실하지 않았으나 전후 맥락으로 보아 좋은 말은 아니다 싶은 感은 있었지요. 그래 제가 욕을 듣고는, 더군다나 믿고 있던 사람한테, 그것도 내 사랑한다고까지 고백했던 사람한테 이런 소리 들으니 괘씸하고, 후레 자식 욕도 나오고, 오랜 옛날 까불락거렸을 때의 아주 심한 욕도 목구멍에 걸리고, 그래 이리 분풀이라도 해야지 그렇지 않다간 화병으로 도질 듯하니 헤아려 주시기를. (지금 막 자려다 분에 넘쳐 눈이 제대로 감기지 않아 이리 자판기를 마구 마구 무식하게 두드립니다.)
첫째, 저는 특정인을 제 삼자 앞에서 왈가왈부 함 그 자체를 혐오하고 증오합니다. 이왕지사 하려면 좋은 얘기를 하든지, 아니면 말든지. 아니 무슨 연유로, 뭘 말하고자 했길래 남이 어쩌니 저쩌니, 아니 그리 할 말이 없었나요? 아니 망말로 남이사 이런들 어떻고 저런들 어떠리 걍 지나치면 어디 덧나요? 저는 그렇게 할 일이 없을 땐 제 콧구멍을 후빈답니다.
둘째, 어눌하다는 語訥하다로서 큰 사전 왈: "말이 굳어 부드럽지 못하고 떠듬떠듬함." 이라 하는군요.
그럼 訥은 무슨 뜻인고? 이 한자는 두 가지 뜻이 있는 바, 그 하나는 말 떠듬을 눌이요, 또 다른 하나는 말 적을 눌, 그러니까 입이 무거워 말을 잘 하지 않음을 뜻하지요. 예컨대 우리 孔丘께 서 말씀하시기를,
君子欲訥於言, 而敏於行
이라 했지요 (論語 里仁篇). 四字成語로 訥言敏行이라고도 말하는 바,
- 이는 군자는 말에는 더디고 실천하는 데에는 민첩하고자 한다는 뜻이니, 말은 쉽게 내뱉을 수 있으니 어렵게 하고, 이에 반해 실천은 어려우니 민첩하고자 해야 한다는 가르침입니다. 그래 제가 항시 염두에 두는 공구님의 말씀이기도 하지요.
그런데 그런 訥字를, 제게 이런 엄청난 가르침을 주는 문자를 님의 입을 통해서 되려 저를 욕하고 꾸짖는 뜻으로 받았구나 생각하니 참으로 하늘이 울고 땅이 통곡하는 지경이 아닙니까?
그렇다고 치사하게 이제와서 미안하다 하지 마십시오. 미안해 하는 사람이나 그 미안 받는 사람이나 모두 치졸해지니 말입니다. 엎지러진 물입니다. 담으려 하기 보다는 마르기를 기다릴 뿐이지요. 날씨가 이리 구질구질하니 마를 날이 언제 올지는 감조차 제대로 잡히진 않지만...
바로 그 里仁篇 마지막 구절의 공구님 가르침이 연쇄 반응적으로 떠오르는군요:
事君數이면 斯辱矣요 朋友數이면 斯疏矣니라
- 임금을 섬김에 자주 간언하면 욕을 보게 되고
벗을 사귐에 충고가 잦으면 사이가 멀어진다
이 정도 되받아치니 이제사 겨우 잠은 청할 수 있을 듯하니 그만 두렵니다.
근데, 근데,
사실 저 역시 물론 남 말 한 적 있지요. 허나 이는 제가 저 자신을 혐오하고 증오했다는 반증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음을 고백합니다.
글고 마지막 공구의 가르침 역시 해당이 되지 않는게, 님의 충고는 煩數가 아니었지요. 오히려 처음이었죠?
그런데 제가 지금 무슨 헛소리를 이리 지껄입니까? ^^*
아니면, 아니면 나는 진정 어눌한가? 오호라, 통재라!
또 뵙겠습니다.
건강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