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방

살아있는 철학

서동철 2010. 10. 2. 19:57
철학을, 어떠한 철학이든, 일반인들 앞에 두고 바로 이들을 위해 설득시키고자 한다면, 이에 그 철학의 내용에와 마찬가지로 전달 방법에도 버금가는 신경을 아울러 써야 마땅하다. 그런데 우리의 원효나 퇴계를 보면 이게 무척 아쉽다. 원효의 금강삼매경을 지금까지 제일 잘 번역했다는 은정희와 손진영의 책을 펼쳐 보아도 읽기 어려운 것은 매 마찬가지다. (물론 나의 무지함이 그 이유의 반 이상을 차지함을 전제한다) 아니 그러니, 나처럼 무지한 놈이니 좀 더 쉬운 번역이 아쉽다. 읽기 쉽고 이해도 어렵지 않은 상냥한 번역 말이다.

물론 이런 생각도 든다. 원효의 원저 자체에 문제가 있지 않을까? 아니 솔직히 원효가 독자를 염두에 두고 글을 썼다고는 생각치 않는다. 오히려 경의 해석에, 어찌 보면 그러니까 위에서 밑으로 내려오는 식의 마음가짐으로 글을 썼지 않았을까? 금강삼매경 또한 경의 해석이 아닌가 말이다. 경 해석하기도 힘겨운데 여기에다 무지한 대중들이 읽기 좋도록 배려한다 함은 아무리 無碍舞의 원효라 해도 무리한 요구였을 것이다. 더군다나 그 시대에 말이다. 그래 이를 따짐은 우스꽝스러운 짓이다. 내가 문제로 삼고 싶은 점은 허나 지금 여기의 사람들이 이 원효의 저서를 어찌 번역하는가 하는 점이다.

읽는 사람을 생각하는, 지금 여기 같이 사는 사람들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라면 그에 걸맞는 메시지의 형식을 갖추어야 옳다 함은 학자적 성실함을 가리키지 않을까?

이와는 조금 다른 문제로, 어쨌거나 바로 우리 조상의 글임에도 불구하고 번역이 되어야만 읽혀질 수 있는 이 사실이 안타깝다. 언어 그 자체가 품고 있는 감칠 맛을 직접 느끼기에 힘들어 하는 내가 멍청히 보이니 부끄럽기도 하다.

......

원효의 학술적 연구 어쩌니 저쩌니 떠드는 것도 좋은데, 내 욕심으로는 우선 원효를 가슴에 와 닿도록 어찌 전달하는가 하는 문제의 해결이 더욱 시급하다.

강하고 힘찬 철학은 지금 여기 우리의 가슴을 찡하니 울리는 그러한 글로 이루어지고 다듬어진 철학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