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어렸을 때 내가 살던 집 바로 옆에는 논이 있었다. 때가 되면 올챙이 잡으러 다니라 바빴고, 개구리 우는 소리에 잠을 설치기까지 했던 기억이 여적 남아 있다. 철이 되면 뻐찌 따먹느라 바빴고, 여름철 시냇물에서 물장구치며 가재 잡느라 바위에 부딪쳐 선혈이 낭자한 이마빡의 아픔도 잊고 놀았다. 저녁 땐 또한 동네 동무들과 빤쯔만 입고 새끼줄에 둘러 싸인 한 무리가 되어 기차놀이를 하며 엄마가 부르는 밥먹어라 하는 소리를 못들은 척하기가 일수였다. 어디 그것 뿐이랴, 추운 겨울에도 손가락을 호호 불어대며 구슬치기 - 솔직히 말하자면 다마치기라 불렀다 -, 딱지치기, 연날리기, 팽이돌리기 등등, 아, 잣치기도 있었다. 지금은 허나 이러한 놀이 뿐만 아니라 이를 벌렸던 공간 자체가 없어졌다. 논두렁 대신 집벽들이 줄줄이 들어섰고, 골목길에 들어서면 맡곤 했던 아궁이 위에서 꽁치 굽는 냄새는 아파트의 철근벽에 뭉개져버렸다. 내 마음 속에 고이 담긴 이러한 정겨운 모습들에 지금도 가끔씩 웃음을 머금곤 한다. 누가 나보고 고향이 어디냐 물으면 선뜻 떠오르는 모습이 바로 그 때 그 시절이다. 그럼 나는 지금 실향민인가? 서울에서 태어나 20여년을 줄곧 지냈으면서도 독일친구가 나 때문에라도 한번 가 보겠다고 하면 점심 싸들고 다니면서 뭐 볼게 있다고 거기를 가려느냐, 그 비행기 삯으로 알프스에 들어가 얼추 한 달 묵고 오자며 말리는 나에게 그나마 그 도시에 미련이 있다면 바로 이 모습 때문이다. 근데 그 씨가 말라 버렸으니 나는 고향을 잃었음이 틀림없다.
그래 다시 고향을 찾고 있다. 새로운 고향, 내 마음 속에서만 그릴 수 있는 그런 데가 아니라 내가 실제 직접 가서 포근함을 느끼며 향긋한 날숨과 들숨을 만끽할 수 있는 그런 곳, 지금 여기 내게는 다른 곳일 수가 없다 - 알프스. 고향을 잃었으니 다시 만들어 찾는 게다. 근데 꼭 있어야 하는가 하고 자문해 보고, 더군다나 내 사주팔자에 역마살이 아주 깊게 끼어 있다는 진리에 고개를 끄덕인다 하더라도 그래도 내가 서슴치 않고 다시 찾고픈 그런 곳이 있다면 바로 알프스인데, 이를 고향이라 여긴다는 뜻이다. 고향을 내 마음 밖에 있는 한 특정한 대상이라 여기기 보다는 오히려 내 마음 속에 자리잡고 있는 그 무엇이라 믿고자 한다. 꿩 대신 닭이라고나 할까. 단지 ‘꿩'과 ‘닭'을 아래 위로 놓고 서열을 따지기 보다는 서로 다른 것이다는 인식에 바탕을 두고 나 스스로를 이에 걸맞게 맞추느라 주먹질을 해대곤 한다.
변함 속에서 변하지 않음을 찾아 드러내는 일, 삶이요 바로 예술함과 철학함의 기본 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