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념
왔어? 우리 집에 와. 식사나 함께 하지 뭐. 맥주 마실까? 내 준비할께. 없이 사니 찾는 사람도 뜸한데 반갑구만. 없으니 어디
들어가서 시켜 먹고 마시고 하자는 제안은 하지 못하겠고, 대신 내 장보고 요리를 할 테니 집에서 먹고 마시자는 말을 건네는 게야.
근데, 좀 뭐한 말이다만, 내 나름대론 이도 꽤 큰 투자라는 사실을 밝히고 싶어. 응? 뭐라고? 아니야, 장보는 데 드는 돈을
말하는 게 아니라 준비하고 만나 얘기를 나눔에 투자하는 내 시간을 말하는 게야. 그렇지 않아도 한님께 돌아가기 전까지 내게 여적
남아 있는 많지 않은 시간 내에 그래도 지금까지 받은 것의 반만이라도 돌려주고자 하는 욕심을 채우려면 남들 배 이상의 부지런을
떨어도 이룰까 말까 하거든. 누구 마냥 재주라도 뛰어나면 또 몰라, 그렇지도 않으니 마음이 급해. 손은 이에 따라 움직여 주지
않고 말이지. 물론 너는 내게 무척 고마와 해야 마땅할 게야. 단순히 만나만 줘도 어딘데 요리해서 먹이기까지 하니 이런 예외는
흔한 경우가 절대 아닌 셈이거든. 너만 알고 있어, 괜스레 소문 퍼뜨리지 말고. 나이들수록 귀찮은 건 딱 질색이란 말일시. 응?
뭐라고? 내 어찌 살고 있나 보고 싶다고? 그러세, 보여 줌세. 그럼 이따 보세나.
들어 와. 마침 내 올해 갓나온 햇차를 마시고 있는데, 어뗘, 한 잔 함께 할텐가? 그러세. 집안이 좀 그렇지? 정리정돈을
하자니 끝이 보이지 않고, 어디 그 뿐인가, 먼지 말이야, 특히 이 도시의 악명 높은 미세먼지 쌓이는 모습 보노라면 가끔씩
섬짓하기도 해. 밑도 끝도 없거든. 그래 깨끗히 살자는 마음과 일하자 하는 마음 사이에 타협을 이루라 주문했지. 아주 말끔히
정리정돈 하고 살자니 일할 시간이 모자라 그런 게야. 달리 말하자면, 그래, 적당히 깨끗하게 살자 이거지. 더군다나 나처럼 집이 곧
일하는 곳이기도 한 사람에겐 이런 저런 특이한 어려움들이 있어. 한번 마셔 봐, 어머니 땅의 싱싱한 기운이 쭉 뻗침을 느낄 걸.
좋지? 그런데 그런 특이한 어려움들 중에 꽤나 성가신 게 있는데, 남들처럼 회사에 출근하며 해치우는 그런 일, 즉 장소이동이
동반되는 일이 아니다 보니 겪게 되는 불편함, 무슨 말이냐 하면 남들은 회사라는 일하는 곳을 따로 갖고 있고 집은 일한 뒤에 쉬는
곳이라 여기는데, 내게는 집 역시 동시에 일하는 곳이거든. 그러다 보니 내 집에서 일하다 받는 전화를 통해 들리곤 하는 소리가
마치 내가 쉬고 있다는 전제를 깔고 던지는 말인양 들리는 게야. 웃지 마, 이게 니 귀에는 가볍게 들릴지 몰라도 내게는 꽤나
중요한 문제로 나타나. 동병상린이라고 나와 엇비슷한 모습으로 사는 한 친구는 이를 곧 이해하던데, 그렇지 않은 친구들은 이해하기
퍽이나 힘든 모양이야. 지금 너처럼 말이지. 그래 어쩔 수 없이 칼을 들었어. 딱 자르는 수 밖에 없을 듯하니 말이야. 내 일하는
중에 누가 만나자 하면 주저없이 거절하는 말을 던져. 속이 뜨거울 땐 밖으로 차게 보일 필요가 있지. 차가운 물로 이루어진
테두리로 둘러싸인 뜨거운 불의 모습이라고나 할까? 나 그렇게 살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