툇마루

한 여자

서동철 2010. 5. 17. 16:45

매일매일의 조깅 때마다 마주치는 여자가 있었다. 추측에 독일여자 역시 나와 마찬가지로 해가 질무렵의 시간대에 올림픽공원을 즐기는 듯했다. 단지 달리는 나와는 달리 걷는 모습이었다. 그것도 반드시 목발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불구는 아니나 신체 어딘가가 매우 불편한 보이는 50 중반의 여자였다. 심한 병에 시달린 서서히 몸의 회복을 위해 스스로 내지는 의사의 권고로 산책을 하지 않나 싶었다. 근데 묘하게도 그녀는 내가 뜀박질하는 방향과 반대로 길을 선택했으니 나와는 얼굴과 얼굴을 서로 맞대고 바라보며 지나치곤 했다. 더군다나 역시 천천히 달리는 편이라 곧은 길에선 오랫동안 서로를 쳐다볼 있었다. 

마주칠 때마다 우리는 무언의 인사를 나눴다. 비록 통성명을 나누지는 않은 사이였지만 얼추 이틀에 한번 꼴로 살아있음을 확인하는 사이이다 보니 언제부터인가 나는 그녀를 때마다 자연스럽게 눈웃음을 머금게 되었고 그녀 역시 내게 상냥한 얼굴로 답을 보냈다. 때론 두명의 지인들이 그녀를 동반하며 무리를 이루었지만 대부분은 혼자 목발을 짚고 천천히 발자욱씩 옮기는 모습이었다. 눈웃음의 나눔은 비록 잠깐이었지만 언제부터인가 내게 그녀의 빠른 회복을 비는 마음이 우러나오기에 충분히 시간이었다. 잠깐이라는 시간도 그리 쌓이는 모양이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동안 그녀는 보이지 않았다. 매일매일, 심지어 오는 날에도 우비를 입고 부지런히 걷는 그녀를 보았기에 나는 회복을 믿었었고, 언제부터인가 내게는 절뚝거리며 걷는 그녀의 모습을 바라봄이 조깅함에 작지 않은 기쁨이었다. 자기에게 덮친 어려움에 굳건히 버티는 모습이라 할까, 내게는 사람들한테서 드물게나마 엿볼 있는 이런 닥친 운명에 반항하는 모습이 한없이 정겹다. 만큼 그런 사람들을 사랑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나는 독일여자한테서 이런 모습을 본다 여겼고, 따라서 사랑하는 사람이 보이지 않으니 그리운 마음이 솟구쳤던 게다. 

며칠 그녀를 다시 보았다. 허나 , 섬짓 놀랄 밖에 없었다. 그녀는 이상 걷지를 않고 휠체어에 앉아 있었던 게다. 나는 우선 반가움에 눈웃음 이상의 두터운 웃음을 건넸고, 동시에 미리 내다보지 못했던 모습에 당황해 잠시 뛰는 속도를 늦추어야 했다. 순간 그녀는 언제나처럼 내게 다소곳하고 은근한 미소를 보냈는데, 그녀의 눈에 고이는 눈물이 글썽임을 보았다. 반가움의 눈물이었을까, 아니면, 아니면 나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한 자신이 부끄러워 내보이는 미안함의 눈물이었을까? 아니, 어쩌면 오히려 눈이 는개에 뒤덮여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전 걸을 때보다는 뜸했으나 그래도 가끔씩 휠체어에 실린 그녀와 마주쳤다. 남편으로 보이는 중년남자가 동반하고 있었다. 우리는 서로의 존재를 확인함에 변함없이 반가와 했다. 우리의 이러한 은밀한 만남을 동반자는 이미 알고 있다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모습이었다. 허나 나의 관심은 어느 마주치는 짧은 순간에 그녀가 내게 보내는 눈웃음을 통해 그녀 몸과 정신의 상태를 파악하는 일에 쏠려 있었다. 그녀의 눈망울은 이전과 확실히 달랐다. 밝음이 허약해졌고 어두움이 서서히 앞으로 나서고 있었다. 자기한테 떨어지는 운명이라는 철퇴에 그래도 에잇하며 버티는 반항의 몸짓이 내뿜었던 빛깔이 적지 않이 퇴색되어 있음을 엿볼 있었다. 심지어 간혹 자포자기의 눈빛을 받았다는 느낌에 나는 뛰면서도 몸을 으시시 떨어야 했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매일 그녀를 찾고 있다. 허공에 매달려 있는 눈웃음은 아직도 바람에 살랑거리고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