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방

music, Music, MUSIC

서동철 2010. 4. 27. 02:52

Beckett 그의 초기작  Murphy 구석에서 선보이는 표현이다. 음악의 힘을 그래도 조금은 이렇게라도 강조하겠다는 야멸찬 의지를 엿본다. 그런데 바람이 불어 새삼스레이 다시금 음악의 힘을 입에 담고 거품을 물고 야단인가? 힘이 적나라하게 나타나는 아름다운 영화를 만끽한 직후라 그렇다.


오늘 몽골의 영화를 봤다: 우는 낙타 이야기. 1971 몽골의 여자Byambasuren Davaa(사진) 공동감독한 2003년도 작품이며 2005 오스카 최고 기록영화상 수상후보에까지 올랐던, 그외 독일 바이에른주 영화상 몇몇 상들을 휩쓸은 뛰어난 영화다. ‘기록영화 하지만 기록영화처럼 보이는 비기록영화라 해야 걸맞는 표현이 아닐까 싶다. 


몽골 고비 사막에 거주하는 유목민 가족에 붙어 사는 갈색낙타가 새끼를 깐다. 근데 난산이다. 새끼 놈이 나오긴 나오는데 머리부터가 아니라 다리부터 세상공기를 씌우기 시작하더니 여간해서 완전 빠질 생각을 하지 않는다. 결국 이런 저런 고비를 넘긴 머리부터 나오기 시작은 하는데 사람의 도움없이는 불가능했을 출산이다. 어미낙타가 엄청난 고통을 치룬 뒤에야 하얀색의 새끼낙타는 세상빛을 본다. 그런데 문제는 어미낙타가 고통의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해 새끼낙타에게 젖을 먹임을 완강히 거부하는 게다. 자기 새낀데도 불구하고. 집사람들이 낙타젖을 따로 먹이려 해도 새끼낙타는 이를 완강히 거부한다. 오로지 어미낙타 젖을 직접 빨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이는 게다. 당연하지 어민데. 그래 계속 이런 상태로 나가다가는 새끼낙타의 생명이 위험하겠다 여긴 유목식구들은 시내에 있는 음악학교에서 몽골 전통음악을 가르치는 선생을 일부러 불러 음악의 힘을 빌어 어미낙타의 모정을 되살리는 시도를 벌린다. 몽골의 오래된 주술적 전통이다. 몽골 전래의 줄짜리 현악기에 사람이 소리를 내며 응얼대는 구슬픈 가락이다. 아니, 구슬프다기 보다는 오히려 어쩌면 아름다운 선율이라는 말이 걸맞지 싶다. 소리를 하는 몽골여자( 아이들의 엄마) 동시에 어미낙타의 목언저리 부분을 부드럽게 쓰다듬는다. 이에 어미낙타는 음악의 힘에 눌려 출산의 고통에 밀려 잠시나마 잃었던 모성애를 서서히 허나 끊어짐 없이 다시 찾는다. 순간 어미는, 어라, 눈물을 흘리고, 기록영화가 눈물을 생생히 보여준다, 새끼에게 자기 빨기를 드디어 허락한다. 

Happy end.

음악이 모성적 호르몬 분비를 촉진시켰다는 해석보다는 한님이 음악의 힘을 통해 어미낙타의 구천에 떠도는 모성애를 다시 찾아 심어주셨다는 믿음을 품고 싶다. 


뮌헨 영화필름대학을 나오고 뮌헨에 거주하는 몽골의 여감독Davaa 2005년에 그녀의 번째 작품을 세상에 내놓았다: 누렁이의 . 영화는 개봉 당시 극장에서 직접 봤다. 설날에 한번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