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사업과 자연보호
김형,
오늘은 메스너 알프스 관광 두 번째 시간이었습니다. 알프스 동쪽 자락 끝 비엔나에서 시작해서 메스너가 사는 동네 ‘남부티롤’까지 훑고 지나가는 내용입니다. 특히 알프스의 동쪽, 스키장으로 이름을 날리고 있는 욋쯔탈을 무대로 벌어지는 관광사업 추진쪽과 이를 반대하며 자연을 자연 그대로 두자는 순자연보호 쪽과의 의견대립은 짜장 같은 현상을 두고 사람들의 시각이 어느 정도 벌어질 수 있는가를 뚜렷하게 엿보기에 충분했지요. 전자는 보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프스와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주며 돈벌이를 통해 보다 더 나은 살림을 꾸릴 수 있다는 주장인 반면 바로 그 지역에서 산악농가를 꾸리고 있는 한 할아버지는 스키관광사업을 하느라 산봉우리등을 깍는 등 돈벌이를 위해 산을 아무 대책없이 훼손한다고 노발대발 하더군요. 특히 그 지방은 신석기시대로 추정되는 주거지역의 흔적이 여적 남아있는데 그 당시에 이미 신성한 지역으로 사람들에게 인지되고 있었다 합니다. 메스너는 이에 나름대로 솔로몬적 판단을 내리는 모습을 보입니다. 관광사업을 아주 배척한다면 알프스 지역은 가난한 지역으로 남을 수 밖에 없으니 좀 그렇고 그렇다고 무분별하게 개발하며 산을 파괴하면 결국 획일화된 자연 밖에는 남지 않을 것임을 주의 시키더군요. 그러니까 중용을 지키며 살자는 말인데, 그는 자기 삶의 철학에 준해 삶 자체가 곧 문제 해결이다고 웅변합니다.
메스너는 또한 알프스의 한 산악농가를 직접 찾았는데, 해발 1100 이상 되는 지역에서 레몬나무를 재배하며 열매를 거두는 오스트리아의 한 농부와 직접 대화를 나누더군요. 농부 왈, 이탈리아의 따뜻한 지역에서나 가능하다는 레몬재배가 알프스 산악에서도 가능하다며 그 이유로 바위 틈새의 따뜻함에 힘입는 농사라 하더군요. 농부의 놀라운 지혜입니다. 그 외에도 그 농부는 한 곡식만 집중해서 짓는 대신 여러가지 잡곡들을 섞어 가꾸고 있는데, 이를 통해 일반 농사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곡물들의 소위 중독성을 방지할 수 있다 합니다. 중독성에 감염된 곡물들은 비료나 방충체등 인공적인 도움없이는 제대로 성장할 수 없는 허약함을 피할 수 없다고요. 덧붙여 이러한 중독성 곡물들은 배를 채우기에는 충분할지 모르나 우리 몸이 요구하는 자양분이 되기에는 부족함이 뚜렷하다 합니다. 어쨌든 이러한 생각하는 농법으로 그 농부는 알프스 농가에서 꽤 성공한 측에 속한다며 이즈음은 농사일 외에도 농법조언자로도 바삐 지내고 있다는데, 저 역시 한번 이 사람의 강연을 듣고싶은 마음이 굴뚝 같습니다. 메스너 식으로 바라보자면 이 농부는 진짜 ‘사는’ 사람이지 싶네요.
알프스의 교통량 증가 역시 몇 년 이래 작지 않은 문제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산을 뚫는터널이 한 두개 있으나 남북교통로, 그러니까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출발해서 오스트리아 티롤을 거쳐 독일의 뮌헨으로 가는 교통량을 완전 소화시키기에는 작금 무리임이 확연합니다. 관광객들의 이동도 그렇지만 특히 화물차의 이동량이 엄청 크지요. 그래 이들이 통과하는 알프스 지역 사람들의 원성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환경오염에 소음까지 동원하고 있으니 말이지요. 이를 해소하기 위한 한 대책으로 오스트리아의 한 교통건축가가 던진 제안을 메스너가 소개하는데, 산을 뚫고 분지와 분지를 직접 연결하는 높이에서 긴 통로를 만들어 화물량을 적지적소에서 재빨리 수송한다는 계획입니다. 우선 밀라노에서 뮌헨까지의 연결을 그리고 있더군요. 가만 들으니 기술적으론 어느 정도 설득력을 갖추었다 보는데, 그 계획을 실제 추진하기 위한 정치적인 작업에 적지 않은 문제점들이 도사리고 있는 듯합니다. 제 눈에 그 통로의 높이가 분지 높이 이상이 아니라 다행히 산을 해치는 정도는 어느 정도 제한되어 있어 보입니다. 만약 이 계획이 알프스에서 늘어만 가고 있는 교통량 해소에 도움이 된다면 굳이 반대할 정치적 이유 또한 없다 여깁니다.
알프스라는 자연은 어찌하면 모든 사람들에게 열려 있는 공간으로 만들 수 있으며 또한 동시에 살림살이가 가능하고 충분한 지역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가를 꼼꼼히 짚어보는 모습에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나라의 백두대간도 떠오르고요. 산이 우리가 주말마다 시간이 나는 경우에만 찾는 공간이 아니라 오히려 본격적인 삶의 바탕이요 터전인 경우이니 말입니다.
새해에도 우리 건강하게 사는 모습 그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