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에 뽀족한 산이 쇤펠드슈핏쩨다.
사람들이 이 산악지역을 왜‘돌바다’(Steinernes Meer)라 부르는지 그 이유를 이제서야 제대로 알겠더라. 넓은 평지가 온통 돌이다. 그것도 알프스 북부에 고루 퍼져 있는 석회석. 무지 넓으니 ‘바다’라 칭하지 싶다. 그렇다고 축구는 하지 못하고, 오히려 걸을 때 조심하지 않으면 크게 다친다. 깊게 패인 돌 틈에 푹 빠질 수도 있고. 하여튼 보고 즐길만한 곳이라 여긴다. 이 지역에서 두번째로 높은 산을 찾았다: 쇤펠드슈핏쩨, 해발 2653미터다. 가장 높은 산은 그 동쪽으로 조금 떨어져 있는 젤브호른(Selbhorn) 산인데, 불과 1미터 더 높다. 그래 적지 않은 사람들이 쇤펠드슈핏쩨를 가장 높은 산으로 잘못 알고 있다는데, 이 산 모습이 워낙 특출나고, 그러기에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이 꼭대기를 찾음에서 연유하는 오해인 듯하다. 독일 베르흐테스가덴 지역의 명소 쾨니히 호수 에서 유람선을 타고 가며 남쪽 오스트리아 쪽을 바라보면 피라미드 모습으로 우뚝 돌출된 꼭대기가 눈에 확 띄는데, 바로 그 산이다. 모습이 스위스 최고봉 마테호른과 엇비슷해 ‘작은 마테호른’이라는 앙증맞은 별명을 갖고 있기도 하다.
오름길 또한 색다름에 초점을 맞추었다. 거개의 사람들이 오르는 정상길 말고 소위 ‘잊혀진 길’을 일부러 골랐다. 왜 잊혀졌는지는 나중에 정상길을 밟고 다시 내려오니 이해할 수 있었다. 정상길보다 더 길고 훨씬 험하니 힘이 더 들뿐 아니라 시간 또한 두 배 이상 걸리니 말이다. 단지 오르면서 만끽하는 주위 경관이 뛰어나고 무엇보다도 ‘잊혀져 버려’내가 찾는 외로움을 마음껏 즐길 수 있어 아주 좋았다. 주차장에서 적지 않은 사람들을 봤는데 이 길로 오른 이는 그 날 나 혼자 뿐이었다. 힘들긴 물론 힘들었다. 경사가 워낙 심해 내려오는 길로는 어울리지 않다는 말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만큼 암벽을 탈 때 손도 가끔씩 써야 했고. 한 젊은 독일친구가 가르쳐 준 길인데, 이 친구는 정상에 저녁 때 올라가 침낭 속에서 밤을 지냄을 취미로 여긴다. 꼭대기에서 맞이하는 새벽의 산이 너무 아름답다고. 그 아름다움이야 나 역시 어느 정도 상상할 수 있다만, 나는 그런 짓 하고픈 마음 없다. 산 꼭대기는 사람이 자는 곳이 아니라 여긴다. 어쩔 수 없이 그 곳에서 밤을 지내야 할 경우가 생길 수는 있으나 일부러 찾아가 잠자리를 펴는 모습에는 내 별 흥미 없다. 산은 뜀박질 하는 장소가 아니라는 내 입장과 같은 맥락이다.
얼추 4시간 올랐나, 첫 번째 목표로 삼은 지점에 박힌 십자가가 눈에 띄었다. 몇해 전 남미 어딘가에서 실종된 한 독일여자를 기리는 마음에서 십자가를 박았다고. 방명록에 ‘잊혀진 길’을 통해 올랐다 알리며 잊혀질 수 없는 경험이었음을 아울러 밝혔다. 물 한모금 마시고 쇤펠드슈핏쩨 꼭대기를 바라보니 시간 반은 암벽을 타야지 싶었다. 물론 돌산이다. 능선을 타고 이 산 어귀까지 걸으며 사방에 펼쳐지는 ‘돌바다’및 계곡의 모습을 만끽했다. 산행이 주는 시원한 맛이다. 눈요기라 하면 너무 소박하고 마음을 씻어주는 자연의 씻김굿이라고나 할까. 꼭대기까지 쉽지는 않은 길이었다. 특히 가파른 암벽을 타야 했을 땐‘잊혀진 길’을 오르느라 쏟았던 힘이 아쉽기도 했다. 꼭대기의 특이한 십자가에 합장과 함께 고개를 숙였다.
산 어귀 마을의 한 예술가가 만든 작품이라 한다. 바른쪽에 깔려 있는 안개 밑에 쾨니히호수가 자리 잡고 있다. 그 왼쪽으로 이어지는 '돌바다'의 일부가 보인다.
오스트리아 산악부대 군인들이 단체 소풍을 즐기고 있는 산장을 지나쳐 내려오는데, 그 내림길이 보이는 모습에 적지 아니 놀랐다. 길이 생기기 전에는 자일을 이용해 암벽을 타지 않고는 오르고 내릴 수 없는 지역에 그냥 돌을 깍아 만들지 않고 시멘트까지 부어가며 층계를 지었으니 말이다. 안전자일까지 쭉 이어져 설치되어 있고. 엄청난 노력과 시간이 필요했을 게다. 이 길이 있기에 밑에서부터 산장까지 쉽고 빠르게 오를 수 있으니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이 길을 밟는다. 밑에서부터 ‘돌바다’까지 오르는 여러 길들 중 이 길을 통해 오름이 가장 빠르고 손쉽다 한다. 덕분에 이 길 동쪽에 평행으로 뻗친 산줄기 넘어 있는 계곡을 따라 자리한 그 ‘잊혀진 길’이 잊혀져 버린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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