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방

‘일기’

서동철 2010. 9. 4. 17:04
마음 속에서 들리는 여러 소리들을 담는 그릇들 중 일기는 편지와 함께 내게 친숙함을 선사한다. 그래 사랑스러워 더욱 아끼게 되고, 때론 고맙기까지 하다. 이는 허나 이러한 글쓰기 형식 자체가 갖는 특별한 이유에서라기 보다는 오히려 내 개인적 경험에 연유하는 현상이지 싶다. 오랜 독일생활에서 그래도 처음부터 지금까지 줄곧 우리말로 중얼대는 유일한 끄적거림이 일기다. 편지는 인터넷이 우리네 생활을 엄습하기 이전까지는 최소한 일주일에 한번씩은 어머니께 소식을 전하는 소중한 수단이었다. 그 이후 매우 뜸해지기는 했으나 대신 메일로 인사를 드리기에 그 흔적은 어쨌든 남아있다고 여긴다. 일기는 허나 내 곁을 한시도 떠나지 않았다. 군데 군데 독일말로도 심정을 토로하곤 하니 조금은 국제적인 성격을 띄고 있음이 변화라면 변화일까?

일기는 물론 개인적인, 너무나도 개인적인 생활의 기록이니 이를 공개한다는 사실에 누가 깨름직하다는 느낌을 떨구기 힘들다고 귀뜀을 준다면 충분히 이해가 간다. 심지어 공개를 미리 염두에 두고 쓰는 일기는 네모난 삼각형 마냥 자체모순으로도 비친다. 단지 그런 극히 사적인 생활의 기록으로서 이해되는 일기를 내놓겠다는 뜻이 아니라 일기라는 글쓰는 형식을 빌어 내 품고 있는 생각을 밖으로 드러내 밝혀보고자 하는 욕심을 말한다. 이 형식 속에서 내 마음이 어느 정도 포근하기에 그 선택에 주저하지 않았음을 아울러 고백한다. 이는 달리 말하면 내 ‘일기’ 속에 담긴 내용은 실제 일어난 사실과 시간과 공간을 따져 말한다면 꼭 일치하지 않는다는 변명을 허락한다. 심지어 패러디 같은 꾸며낸 이야기들도 끼우고 하는 등 아무런 체계적인 구속에 얽매이지 않고, 동시에 어느 정도는 그래도 지금 여기의 시간과 공간에 스스로 묶여 있고자 하는 바램을 바탕으로 부담없이 끄적거려 보려는 욕심인 게다.

자기가 사는 시대를 되돌아보며 스스로 곱씹는 세계 속에서 자기시대의 모습을 다시 짜보는 일이 헤겔은 철학함에 속한다고 여겼다. 무엇을 하든, 특히 철학을 직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내가 몸 담고 있는 주변세계와 닿아 있는 인연줄이 끊어져서는 되지 않는다는 당위의 말로도 들리곤 한다. 단지 자기가 속해 있는 세계를 마치 자기와 맞대어 서 있는 듯 바라보며 서술함이 몰고오는 어려움은 사실 내게 벅차기도 하다. 더군다나 이를 헤겔 마냥 철학적 일반으로 그리는 일은 더욱 벅차고. 그래 이를 벗어나면서 동시에 위의 가르침을 내 옳다고 인정하기에 이를 체화시키기 위해 내가 하루하루 겪는 구체적인 삶에서 이런 저런 모습들을 골라 곱씹고 이를 글로 옮겨 그리는 방법을 택했다.

우리시대가 안고 있는 문제점들을 몇 가지로 묶어 살펴볼 수 있지 싶다. 세계화, 신자유주의, 테러 등등이 우선 퍼뜩 떠오르고 동시에 최근 들어 세계금융시장의 붕괴와 더불어 다시금 불거진 자본주의에 대한 회의, 맑스와 사회주의에 대한 재조명 등등이 맴돌고 있다. 물론 이 외에도 시대의 변화를 뚫고 꿋꿋이 버티는 고전적 주제들, 예컨대 자유, 사랑, 교육 등등이 우리시대의 조명을 받고 새로이 그 몰골을 뽐내곤 한다. 아울러 우리의 삶과 특히 다음 세대의 삶에 직접 영향을 끼치는 자연- 내지는 환경보호 또한 그냥 스치며 지나갈 주제가 아니지 싶다. 

잡동사니들을 엉기성기 모았다 하더라도 그 속을 꿰뚫고 얼추 하나로 잇는 흐름은 있어야 한다. 그래야 작품이라는 전체가 유기체로서 생명성을 띌 수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이 흐름이 또한 작품의 바탕이요 큰 주제라 볼 수도 있다.
근데, 펼치면 나오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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